귀거래사 28

참기름 50병을 나누게 되다

by 장현수

시골에 내려간 지 2년째...


12월 25일이었다. 2025년. 유튜브와 각종 SNS를 통해 캐롤송이 넘쳐나던 하루였다.


쌀쌀한 아침 공기를 뜷고 미리 예약 주문한 참기름 50병을 면소재지 기름집에서 서둘러 받아왔다. 조심스레 들고 나른10병들이 다섯봉지는 묵직묵직 했다. 기름집은 떡방앗간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주인은 지인의 지인이었다.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마을 이장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왔다. 참기름을 싣고 동사무소로 향했다. 가슴에 따뜻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한꺼번에 동네 어르신들을 이렇게 많이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은 내게 어떤 기대를 품고 기다리고 있을까.


시골에는 귀농 귀촌한 사람이 마을 주민들에게 대접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지자체에서도 비용지원을 해준다. 여기는 마을사람들과 인사하는 자리다. 마음을 터놓고 만나는 자리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비로소 서로 이웃이 된다.


대접할 때는 집으로 모시고 하는 음식대접이 가장 좋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나처럼 혼자인 경우에 치르기에는 버겁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물을 나누어 드리는 방법을 택한다.


그런데 이러한 대접에 있어서 가장 큰 애로는 대상자에게 일일이 확인서명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서류가 갖추어져야 예산지원이 되는 행정기관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선물드리며 일일이 확인을 받기에는 부담이 컸다. 민망한 일이지 않는가.(경상도 시골 표현으로는 '쭈글 시럽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마을 이장이 있었다. 마을 이장이 기꺼이 동네 어르신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주셨다. 그리고 참기름을 나누게 된 취지를 설명했다. 개인서명은 물론 근거 사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받는 분들도 다 밝은 표정이셨다. 서로 서로 오랫만에 모이셔서 반가운 자리가 되었다. 흥이나신 한 분은 참기름 병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이마에 오만원권 한장 '똭'하고 붙이시고는. 이 오만원권 한장이 바닥에 떨어지자 다른 분들이 우르르 몰려와 서로 주워가겠다고 밀치는 퍼포먼스를 벌이셨다.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 아이가' 하시면서. 순식간에 흥겨운 자리가 되어 보는 눈이 즐거웠다. 이렇게 모두에게 한자리에서 기쁘고 즐거운 가운데 50병 참기름을 선물로 나눌 수 있었다. 즐거운 소통의 시간이었다.


만약 개인적인 미안함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놓고만 있었다면 이런자리가 있을 수 있었을까? 한시간여 동안의 즐겁고 흥겨운 일이 시골 조그마한 동네의 마을회관에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 이장이 도와 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시간 서울 나의 모교회에서는 성탄 축하 예배가 한창 일 무렵이었다. 장로 직분자로서 함께 하지 못했지만 주께서는 나를 이 곳 마을에 남겨 두시고 다른 일을 하도록 이끄셨다. 이방인 고레스왕을 쓰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70년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 모두 고국으로 돌려 보내셨듯이 오늘 주께서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마을 이장을 쓰시고 구원받지 못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내게 온전하게 일하도록 하셨다.


마을 사람들에게 참기름 한병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들어 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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