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된 낱장의 행복
인생은 종착점 없는 상향의 과정이라는데 살아가면서 따뜻한 사연만이 켜켜이 쌓여 간다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후배에게 들은 참 따스한 이야기다.
“얼마 전에 적금이 만기가 되어서 찾으러 은행에 갔는데 자꾸 막내 여동생 생각이 나서 생전에 기회도 자주 올 것 같지 않아 여동생에게 전화 했지, 비밀 통장을 하나 만들어야 되는데 명의 좀 빌리자며”
여동생은 흔쾌히 승낙하면서 농협에서 남매가 만났대.
“세상에 오빠도 비자금 만들고 그래요? 세상 오래살고 볼일이네”
그러면서 여동생은 창구에서 오빠가 건네주는 5천만 원을 자기이름으로 통장개설 한 후, 통장을 오빠에게 건네주는데, 오빠가 그 통장을 다시 여동생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대.
“오빠 선물이다. 그동안 너에게 아무것도 못해줬는데 정말 미안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오직 너만을 위해 써야한다?”
오빠가 돈이 든 통장을 여동생에게 건네주고 농협문은 나서는데 여동생은 그 자리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고, 본인은 창피해서 혼났다나.
(중략)
흑백사진 속 여윈 여동생이 밝게 웃고 있다. 나는 어디 가고, 옆집에 살던 남자아이가 바다그림을 배경으로 동생과 마주앉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진의 사연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내가 아니라 하필 옆집 아이를 앉혔을까? 아마도 사진 값을 아끼려고 그러진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이 사진을 왜 내가 보관하고 있지? 동생 얼굴 잊지 말라고 어머니께서 생전에 이삿짐에 넣어둔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다.
“오빠야!”
이심전심이 이런 거였나?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념을 깨는, 물보다 진한 핏줄로 이어진 텔레파시가 틀림없어. 전화기 너머 들리는 동생의 목소리에 귀가 열리고, 동생 말에 얼굴이 붉어진다.
“통장번호 알려줘, 추석상 차리려면 돈 많이 들어갈 건데, 새언니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만 보탤게”
명절이 가까워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고, 네 몸이나 잘 챙기며 살라고 우격다짐으로 끊었다. 가슴에 따뜻한 바람이 들어왔는데 서늘한 바람이 되어 마음까지 훑고 사라진다. 아이로만 알았는데 서너 해 더 지나면 60줄이란다. 단호한 세월은 형체 없는 살인자가 분명해. 남보다 더 빨리 흐르는 것 같은 속도에 화가 난다.
(중략)
여름이었다. 동무들과 놀다가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갈 무렵 집에 가니 난리도 아니다. 두 살 난 동생이 사라졌다. 무작정 뛰쳐나갔다. 시장을 뒤지고, 초등학교를 샅샅이 훑었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냇가를 향해 달렸다. 모래사장에 생판 모르는 아이들뿐이다.
문득 형 친구들이 예쁘다며 동생을 데리고 다방에 출입했던 생각이 났다. 기억으로는 ‘백조다방’ ‘청자다방’ ‘약속다방’ 등 고향에 다방이 다섯 곳이 넘게 있었다. 이들 다방을 몽땅 뒤졌지만,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백조다방에는 낮에는 아버지, 어둠이 찾아오면 형이 죽치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뉘 집 아들인가도 다들 알아보았을 것이다.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마음도 사위어갔다. 이젠 더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수리 끝에서부터 뒷목까지 전율이 흘렀다. 맥이 빠진 채 무작정 터덜터덜 걸었다. 어쩌면 다시는 동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굳어지자 눈물이 고였다. 혹여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누나나 엄마가 찾았을지도 모르다고 자위했다. 제발…,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빌었다. 딴에는 간절하게….
성질 급한 별이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파출소 앞을 지나고, 양복점을 막 지날 때였다. 천상의 울림이었다. 분명….
“오빠야!”
이처럼 맑은 목소리, 동생이 틀림없다. 파출소 계단에서 놀고 있다가 나를 보고 반갑게 불렀던 것이다. 달려가 동생을 업었다. 문이 열리고 순경이 나왔다. 동생이냐고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 내 눈에 고였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순경이 “이놈 우는구나!” 했지만 들은 채도 않고 동생을 업고 오는데, 순경 둘이 서서 “보자보자” 한다. 고개를 돌렸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 놀린다.
“진짜 우내 저놈.”
동생을 업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언덕길을 올라 집으로 왔다. 동생이 ‘오빠야’ 라고 불러서 찾았다는 말에 어머니는 나보다 동생을 더 대견해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내 나이 여섯 살 때다. 그날부터 동생만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막 중학생이 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대청에 제법 큰 가방이 덩그러니 놓였고, 초등학교 다니던 동생이 울고 있다.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만 있었다. 사연인 즉, 어머니는 동생에게 딸 넷을 두었는데 뭣 하러 또 딸을 낳았겠냐며, 너는 한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며 장난처럼 했던 말이 동생에겐 참을 수 없는 상처였던 것이다. 진짜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면 친엄마 찾으러 떠날 참이었다나? 옷가지랑 만화책과 과자부스러기까지 쟁여 넣고 최후의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마침 마당으로 들어서자 어머니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물었다.
“야가 니 친동생 맞제?”
밤새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 아침, 누나들이랑 부엌에서 아침을 먹는데 안방에서 고양이 울음이 들렸다. 그 소리가 내 동생이 소리쳐 세상에 존재를 알렸던 순간이라고 과장되게 말했다. 어머니가 그 보라며, 오빠가 파출소에서 찾아 울면서 업고 왔던 말을 해주자 동생이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그때부터 오빠는 동생의 생존 증인이 되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