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낱장의 행복

by 박필우입니다




계단 밑 첫 집에 살던 재숙이 누나 이야기다. 누나는 내가 갓난아기 때부터 어머니보다 나를 더 자주 업고 다녔다. 누나가 살던 집은 손바닥만큼 작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었기에 마치 장난감 같았다. 부엌이 달린 단칸방 앞으로 한 사람이 겨우 궁둥이를 붙일 수 있는 마루와 그 아래 봉당이 있고, 가운데 오르내리기 좋게 댓돌이 놓였다.


숨 막히게 작은 마당이 마치 제 것인 양 반을 차지한 몇 되지 않은 장독대 옹기 뒤로 담장을 대신한 찔레가 세상과 유일한 경계였다. 나는 누나로 인해 동화 하나가 생겨났다. 세상이 모두 잠든 밤이면 조막만 한 집은 화려한 궁전으로 마법이 걸릴 것만 같았다.


누나의 눈높이 놀이가 가능하게 한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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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시집가던 날, 누나가 들려주던 신데렐라 사랑은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었고, 남편 될 사람은 내가 상상하던 왕자님이 아니었다. 가난이 미래를 뜻대로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고, 소박한 꿈도, 희미한 희망마저도 품게 두지 않았다. 먼 곳으로 늙은 남정네에게 팔려가던 그날, 다가올 불행을 예견하고 그토록 서럽게 운 것인지 연지곤지 찍은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투명보석 같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내 가슴에 방울방울 들어와 다시 흐르게 했다.


누나가 시집 간지 일 년이 지난 어느 봄, 담장에 하얀 찔레꽃이 만발하던 날이었다. 어디선가 흰 나비들이 모여들어 찔레꽃 반, 나비 반으로 뒤덮여 집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누나는 고양이에 놀라 혼이 반쯤 나간 상태로 소박을 맞고 돌아왔다.


이때부터 누나의 삶은 정상과 비정상을 마음대로 오가는 날의 연속이었다. 간혹 하얀 찔레꽃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중얼중얼 혼잣말했고, 어떤 날은 진정한 공주로 거듭난 것처럼 머리가 보이지 않게 꽃으로 장식하고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나를 보면 또박또박 이름을 부르며 잠시 정신을 되찾는 듯 보였다. 내게 주는 맹목적 사랑이 가능하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동네에 굿판이 벌어졌다. 둥당거리는 소리를 향해 신나게 달려갔다. 누나의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른 굿판이었다. 누나가 빨랫방망이로 매질을 당하는 처참한 광경에 나는 소스라쳤다. 누나에게 빌붙어 기생하는 귀신을 매질로 쫓아낸다는 무지막지한 발상 앞에 주위에선 남의 일인 양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깡마른 누나만 애가 끊어지는 소리로 하늘이 떠나가라 악을 쓰고 있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누나가 혼절을 하고서야 매질은 멈췄다. 휘파람 소리를 섞어 긴 숨을 내쉬던 저승사자와 같은 무당의 눈길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공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는 급살을 맞은 듯 쓰러져버렸다.


멍투성이 누나는 사경을 헤매고 누워있는 나를 찾아왔다. 당황한 어머니가 만류했으나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누나의 그런 모습은 매질했던 무당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약을 달이고 미음 쑤는 일은 모두 재숙이 누나가 앞섰으며,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면 내 옆에 앉은 채 잠들곤 했단다. 어머니와 누나 정성 덕분인지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꼬박 일주일을 헤맨 끝에 기적처럼 살아났다. 무엇이 누나에게 그런 힘을 갖게 했을까?


그러나 연약한 영혼을 가진 나의 수호천사는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잡고 있던 정신 줄을 다시 놓고 말았다. 더불어 무당의 명성도 곤두박질쳤다.


누나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누나에게 수호천사가 아니었다. 내가 한눈을 파는 사이 끔찍한 일을 당했다. 차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배는 이제 곧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배를 쓰다듬으며 자신이 곧 어머니가 되는 것을 행복해했다.


얼마 뒤, 내 어머니의 도움으로 딸아이를 순산했고, 모정은 또 다른 기적을 일으켜 정신이 되돌아오게 했다. 이제 더 불행은 없을 것이라며 새 삶을 위해 30년 살던 장난감 같은 집을 버리고 먼 곳으로 이사 갔다.


몇 년 후, 어머니에게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새롭게 시작하리란 희망을 품기에는 과거의 여파는 매몰찼다. 누나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저질의 삶에서 더러운 경제 논리를 내세운 늙은 남정네는 누나를 데려갈 때 건넨 종잣돈을 발목 잡아 다시 데려가고 말았다.


그러나 경계를 마음대로 오가는 누나의 자유로운 영혼은 막을 수 없었다. 누나는 다시 정신 줄을 놓았고, 또다시 족쇄가 풀리자 딸아이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 어린 시절 삶의 조각들을 선명하게 이어 붙여보았다. 어둠 속 실타래를 따라가듯 이것이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재숙이 누나와 관련된 모두다. 정상과 비정상에서 줄타기하던 누나는 어떤 때가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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