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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Apr 27. 2024

裸木, 그 이후…

순우리말 섞어 수필쓰기



   

옛 마을엔 이야기 한 개쯤 전해져 내려오기 마련이다. 전설은 시간의 강을 건너고, 공간이라는 벽을 넘어 전해온다. 오랜 이야기와 함께 원시적인 질서로 꼬리에 꼬리를 문 자그마한 산마을 풍경은 무던한 가슴을 속절없이 흔든다. 그러나 더 깊고, 더 지독한 고독을 선택한 삶에는 우리가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자연의 힘이 작용했으리라.     


자발적 유배자가 되어 끝끝내 홀로서기를 고집한 오지와의 인연이 달갑다. 저기 먼 숲속에서 고개를 쏙 내민 굴뚝이 반기면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려 걷기를 즐긴다. 난데로 떠돌다 주춤주춤 고향으로 향하는 탕아의 발걸음을 닮은 에움길은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간에게 허락한 마지막 배려 같다. 길에서 만난 근원을 알 길 없는 고목의 용트림에 덧없이 짧은 인생은 시간조차 그 의미를 잃게 했다. 숲은 햇살에 짙푸르고, 공기는 더 달게 느껴졌다. 등굽잇길을 에두르자 세상 구경에 들뜬 연생이 고라니가 폴짝폴짝 엉덩이의 잔상만을 남긴 채 숲으로 사라진다. 자연의 세상에 살짝 발을 담그는 순간 환영 인사치고 제법이다.     

 

숲에 반쯤 몸을 숨긴 처가에 도착하자 그간의 감성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 태풍에 나무가 뽑혀 넘어졌는데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다는 장모의 압력이 인사를 대신했다. 땔감으로 잘라오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의 메밀눈이 결정적이었다.


모처럼 가슴은 비장감으로 충만했다. 전동 체인톱과 손바닥에 꼭 잡히는 톱까지 챙겨 잡목 우거진 자드락길을 올랐다. 눈발에 힘이 들어가자 전장으로 향하는 장수의 마음이 이럴까 싶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굵은 은사시나무를 마주하면서 비장감은커녕 기선마저 제압당하고 말았다. 한 아름으로도 한참 부족한 굵기의 은사시를 넘어뜨릴 바람이라니? 새삼 자연의 경이로운 힘을 느꼈다. 둔덕이 무너지자 뿌리가 드러나면서 부실하게 지탱했던 탓일 거다. 문득 은사시 나이테의 다탁茶卓이 떠올랐다.      


제가 굵어 봐야 뿌리 뽑힌 나무일뿐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 풋내기 나무꾼의 터수 없는 솜씨가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어깨와 손목이 움직이지 않게 힘을 주었다. 머릿속에 그려낸 찻상에 어울리게 밑둥치를 대각선으로 공략했다. ‘빠바바방!’ 순식간에 기계음이 숲의 고요를 깨웠다. 전동 체인 톱날이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계곡에 울리고 산허리에 퍼졌다. 이방인이 궁금해 나뭇가지에 앉아 멀뚱거리던 까마귀 한 마리가 괴기한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손목이 덜덜 떨리는 것도 반 정도까지였다. 가슴을 파고드는 외마디 비명, 은사시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마지막 외침이었다. 태풍에 뿌리가 뽑히던 날에 이어 태어나서 두 번째일 것이다. 아뿔싸! 잘려가던 은사시가 몸을 비틀어 전동 톱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최후의 반항, 감히 너 같이 인생을 무턱대고 살아가는 유의 인간에게 쉬이 당할 내가 아니란 듯 사납기 짝이 없다.      


무릇 삶이란 그런 것,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닥치면 원인 파악이 가장 먼저다. 반대쪽 상황을 살피기 위해 오른쪽 다리를 들어 나무에 걸친 후 등걸에 올라탔다. 가랑이로 몸을 지탱하면서 왼쪽 다리를 올리는 순간이었다. 안쪽 발목을 할퀴는 통증을 느꼈다. 부러진 삭정이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했다. 공룡 발톱에 긁힌 듯 붉은 사선 셋, 거칠게 난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눈으로 상처를 확인하자 더 아려왔다. 발버둥 치며 힘겹게 반대편으로 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별다른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참 하찮기 짝이 없는 존재란 느낌이 들어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도 그럴 수 없었다. 언제 따라온 아들아이의 눈이 세상의 시선이 되어 짓눌렀다. 애써 어깨와 눈에 힘을 주고 얼굴을 돌렸다.     


강공이 통하지 않으면 남은 수는 애면글면 달래는 것밖에 없었다. 비탈로 내려가 쓰러진 나무를 살폈다. 두 뼘으로도 부족할 곁가지가 땅에 박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계산속 머리 회전이 빨랐다. 작업환경을 위해 주위 잔가지 몇몇을 수동 톱으로 솎아냈다. 충분하다 싶었을 때 곁가지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지구 중력에 의해 밑둥치 틈이 벌어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톱밥이 흩어졌다. 이마에 비지땀이 흐르고, 숨이 턱밑에 차올랐다. 잠시 쉬기 위해 손목에 힘을 푸는 순간 나뭇가지는 톱을 문 채 입을 다물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기에 들어간 가지는 마치 ‘배냇냄새 나는 놈이!’라고 하는 듯했다. 결국 얕봤던 곁가지에 수동 톱마저 당했다. 감시 차 올라온 볼만장만 아내의 시선을 느꼈다. 누가 봐도 상황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내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표정을 남기고 내려갔다. 이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원병을 기다려야 했다. 은사시나무는 두 종류의 톱을 문 채 나뭇잎을 흔들며 히들히들 나를 비웃고 있었다.  삶에는 켜켜이 두른 나이테만큼 경험이 중요했다.


자연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다. 몇 마장 떨어진 마을에 내려가 전동 톱을 빌린 장인이 올라왔다. 장인의 얼굴은 해가 지고 어둠에 침식당해가는 석양같이 검붉었다. 멀뚱하게 서 있는 무기력한 사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장인이 전동 톱 시동을 걸자 굉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장인은 서두르지 않았다. ‘V’자로 홈을 만들어 자르기 시작했다. 우아한 다탁의 멋과 다도茶道의 허영은 대번에 사라졌다. 죄인이 된 듯 옆에서 물고 늘어진 톱을 잡았다. 기름이 타면서 내는 연기와 냄새, 얼굴로 향하는 톱밥의 파편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늘 그래왔듯 어차피 세상은 견디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은사시의 마지막 반항은 거기까지였다.     


땔감에 맞게 적당한 크기로 잘려 나가는 은사시는 사회의 짜인 틀에서 튕겨 나와 야만의 상태로 퇴보를 거듭하는 나를 닮았다. 다른 나무들은 온전하게 뿌리를 내렸건만, 너는 어이하여 자연에서 기반을 잃어버린 채 속을 드러내는 치욕을 당하는지, 한 줌 바람에도 은빛 이파리 흔들어 세상에 존재를 자랑했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자기연민의 순간 동병상련의 마음이런가, 동강동강 잘려 나간 은사시를 향한 측은지심이 일어났다. 양지바른 담장에 줄지어 세워놓고 잠시 쉬기 위해 그 위에 앉았다. 더 희망도 없는, 꺼져가는 생명의 띠가 되어 어울렸다. 토막 난 은사시는 남은 물기마저 빠져나가자 다시 갈라지고 쪼개지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몸에 불이 붙어 마지막 온기를 세상에 전하고 몇 삽 재가 되고, 연기가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은사시의 사연은 빛바랜 전설이 되었다. 벌거숭이 나무들이 북풍을 견디자 해가 바뀌고 봄이 왔다. 나이테의 다탁은커녕 지난 일은 세월에 유린당해 까마득히 잊혔다. 그리 슬플 것도, 별나게 신나는 일도 없는 무덤덤한 일상에 인이 배여 갈 무렵이었다. 처가에 들렸을 때 기력이 다한 것 같았던 옛날의 꿈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흐르는 물가에 무심코 꽂아둔 팔뚝만 한 곁가지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 생명의 신비로움을 찬양하고 있었다. 마치 은사시의 영혼이 깃든 듯 비장함을 노래했다. 자연의 회생본능을 얕보지 말라고 강건했다. 마치 너 따위가 쉬이 단죄할 생명이 아니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삶은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며 얼핏 설핏 살아온 내 그간의 과정을 질타하고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무료한 삶, 마냥 지쳐가는 날에 파릇파릇한 희망의 새싹이 가슴에 돋아나고 있었다. 파란 하늘은 은사시의 꿈을 받아줄 창공을 훤하게 열어놓고 있었다.     

(2017년)


* 한때 우리말 메력에 빠져 남발해 글을 쓸 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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