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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May 18. 2024

인연

출근길에 만난........




아침에 공작소에 가기 위해 아파트를 벗어나 공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발음도 시원찮은, 조막만 한 아이다.

분명 눈은 나를 향하고 있는 걸 보니 내보고 할아버지라고 했다. 난생처음 듣는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란 말을 들을 만큼 늙어 버렸나? 아이 ‘눈이 늙었겠지!’라며 자위했지만, 여전히 씁쓸했다. 아이 눈과 마주치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니, 내게 관심을 보이는 아이라니, 이처럼 팍팍한 세상에 그야 말로 티 없이 맑은 소리에 내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였다. 이 아이 정체가 궁금했다.      


“몇 살?”

“두 돌 지났어요.”      

아, 나보다 더 똑똑한 아이다. 나는 몇 돌이 지났는지 도무지 계산이 안 되는데 말이다. 칠 부 바지, 칠 부 소매 셔츠를 입은, 머리에 솜털이 송송 박힌 아이다. 마주하고 보니 그리 큰 눈은 아니지만 깊고 투명하게 맑다. 나를 빤히 보더니 이런다.     


“어디가세요?” 이건 또 왜 궁금한 것인지….

그래도 인격은 대우를 받음으로써 빛나는 법,

“공작소.” 했다.

“왜요?”

‘남이야!’라고 말해주려다가 참았다.    

  

공작소 뜻이나 알고서 묻는 것인지, 바쁜 일도 없는 터라 내 발길을 붙잡고 이것저것 늘어지는 귀여운 아이가 고맙다. 나 역시 공작소에 왜 가는지 잘 모르고 가는 때가 있다.

말을 돌렸다.      


“너 집 어디야?”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이의 보호자 될 듯한 젊은 여성 두 명이 먼데 그네에 앉아 있다. 그러나 이쪽으로는 신경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OO아파트에 살아요. 저기 저러케 이러케 가믄 있어요.”라며 병아리 발가락 같은 손가락을 휘젓는다.   

  

한 번 웃어주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아이는 헤어지기 싫은 듯 콧잔등에 아침이슬 같은 영롱한 땀방울이 맺힌 채 뒤를 따른다. 뒤로 돌아서 아이 눈과 마주했다. 그만 따라오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아주 짧은 교감(내게는 분명히)이 일었다. 아이가 미끄럼틀 계단으로 몸을 옮긴다. 계단을 오르면서 이런다.     

 

“다음에 또 봐요.” 계단 난간을 잡은 통통한 손등을 꼬집고 싶어졌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요즘엔 워낙 시절이 하 수상하니 잘못하면 치한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래, 또 보자. 잘 놀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이처럼 다정하게 헤어졌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사발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 해! 한참 찾았잖아.” 어머니인 듯한 젊은 아낙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리곤 나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걸음을 재촉했다. 그놈 참…! 오지랖 넓었던 어릴 적 딱 나 같다. 저그 엄마 애를 무척이나 달구겠다.     


문득 조선 후기 문체 파동의 반항아 이옥을 떠올렸다. 북관 기생이 한밤중에 통곡한 것은 이별을 서러워한 것이 아니라 ‘천고에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서러워 울었다’는 글이 생각났다. 담에 만나면 알아나 볼까?    



           



실크로드 중국 길
투루판에서 만난 아이...   
잘 자랐겠지?

어쩌면
우루무치 독립 전사로 거듭났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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