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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May 06. 2024

봄이 갔다

       



꽃 이파리 바람에 눈처럼 흩날린다. 요염한 아름다움에 도취한 상춘객 위로 날라리 북춤을 추며 떨어진다. 부럽다. 황사 바람에 눈자위가 뻑뻑하고, 목에 이물질로 코팅하며 옥죄는 계절이 후딱 지나가길 바라며 버텨야 하는 최악의 계절이다. 더불어 꽃도 밉상이다. 꽃이 피고, 그렇게 지고, 그렇게 살다 가고, 그러다 바람 불고 비 내리면 금방 삼복더위에 혓바닥 뽑아낼 거면서 그리 야단인지 모를 일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황사 바람만 불면 귓가에 맴도는 음률과 음성이 언제쯤이면 사그라질까. 해마다 환청처럼 울려댈 가락을 어쩌면 좋을까. 수술받던 그날 믿음을 증명해 보이라고 강요만 하지 말고, 존재를 증명하라며 떼를 쓰자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나 차라리 희망을 앗아갔더라면 미련이 덜했을까. 얼마 못 가 생살을 찢는 수술을 또 견뎠지만, 결국 마루타였다. 완치 불가 판정을 받은 후에도 특유의 너털웃음을 잃지 않았던 분이 결국 떠났다. 딸아이에게 출판사를 물려주면서 뭐든지 내게 물어보라고 했다니 끝끝내 과분한 찬사다. 단언컨대 나보다 나를 더 나답게 보아준 이상한 눈을 가진 분이다. 




돌이켜보면 어떤 인연이 끝자락을 잡고 있어 6년이라는 주기로 내게 이별을 경험케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2009년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던 서울의 자명고自鳴鼓 형이 그랬고, 2015년 유물유적을 사랑해 도반의 길을 걸었던 부산의 무용無用 형이 그랬고, 2021년 대구의 구담龜潭 형이 ‘봄날은 간다’라는 음성을 남겨둔 채 매화 몽우리가 맺힐 무렵 생을 마감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하나 같이 췌장암이라는 지독한 병마와 싸웠고, 이승의 마지막은 봄을 택했다. 30여 년 전 어머니도 같은 놈이 주는 고통을 오롯이 견디다가 세상에 꽃비가 내리던 그날 그렇게 가셨는데 말이다. 


신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이따위 이별을 경험케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 목적 없는 관심을 받아들이기조차 두렵고 서럽다. 죽음을 선고받자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며 서울서 차를 몰아온 자명고 형이었다. 구석진 곳에서 배를 움켜잡고 고통을 참아내던 뒷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옥죈다. 


부산에서 힘겹게 걸음 했던 무용 형의 장난기 서린 영상이 여전하다. 앞산에서 내게 술 한 잔 받고 싶다더니 그게 마지막이었다. 술잔을 들어 야금야금 들이킨 후 내 몸에 예쁜 꽃이 자라고 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앞산에 핀 진달래를 보면서 막걸리가 자양분이라며 “저놈보다야 예쁘게 피워야지”라는 말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그때 모습이 영상이 되어 영원히 삭제될 수 없도록 저장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구담 형과 즐겁게 나눴던 수육에 소주잔을 생각하면 최후의 만찬 독배 같아 속상하고 죄스럽다. 모질게 말렸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쩌다 귀한 술이라도 얻어걸린 날이면 고이 두었다가 나를 위해 뚜껑을 따곤 했다. 술병을 볼 때마다 나를 떠올렸을 형을 생각하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운치의 미가 완성에 이르렀을 법하다. 


이분들과 인연의 고리가 하늘나라에서 어머니 대신 사랑을 전해주려는 신기였을까. 생각해보면 무난한 일상에서 자신의 생을 뚝 떼어내 평화롭게 나눈 분들인 까닭이다. 그래선지 자명고 형 없는 서울의 고궁은 더욱 복작대고, 무용 형 없는 부산 금정산은 더 번잡하며, 구담 형 없는 대구 남산동은 더 야단스럽다. 이 모두 세상의 잡음을 흡수하는 별난 능력을 지닌 까닭이리라. 관심과 사랑을 당연시하며 그것을 받아 삶을 채웠는데, 돌려주고자 하나 막상 가고 없어 어쩔 수 없이 빚쟁이다. 이자를 계산하듯 야금야금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인생을 채우려 애를 쓰지만 대상 없는 공허함에 막걸리만 축낸다. 


슬픔의 시간이 결코 추억이 될 수는 없다. 골목길을 소외감에 진저리 치며 걷는다. 둘이서 즐겁게 걷던 골목에 보이는 건 앞을 가로막는 주차된 차들뿐이고, 들리는 건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장송곡을 반복하고 있다. 함께 드나들던 주막 앞을 지날 때 안이 시끄러울수록 외롭고 서운하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어데가노?” 할 것만 같은데 환청이 들렸다. 형수와 딸이 반겼다. 눈은 반가움이 그득한데 얼굴 반을 가린 마스크가 슬프다. 긴 세월에도 씻기지 않을 눈물과 회한을 깨물고 있으리라. 내 눈과 마주친 딸아이 눈망울이 우물처럼 변해갔다. 서둘러 골목을 벗어나야 할 일이다. 


유난히 앞서간 분의 갈채가 그리운 요즘이다. 옆에 있다면 이 꼬락서니에 대고 뭐라고 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66세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삶을 애원하며 신명 나게 두드리는 무용 형 북장단에 생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음을 알았다. 술을 맛나게 마시는 법은 결국 사람이라며 구담 형의 뚝뚝 흐르는 정을 다 주워 담지 못해 버거워했다. 


그렇게 봄이 갔다. 눅진한 더위로 지겹도록 고문을 해대던 여름도 매미의 발악과 함께 물러나고 있다. 황사에 눈병 날일 없고, 복날 더위에 지칠 일 없는 가을의 노을을 마주하고 섰다. 인생 역시 애증에 목말라할 일 없고, 시기와 질투에 가슴 쥐어짤 일 없는 계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잦은 눈물이 무엇을 의미 당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쓰라린 이성만이 패배의 잔을 들어 목을 축인다. 


높고 새된 아이들 소리가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고독하다는 뜻이자 늙어간다는 증거다. 서릿바람이 불면 긴 겨울잠에 들일 만 남았는데, 노욕의 자극 결핍증에 노출된 작금에도 정작 작은 갈망조차도 없는 변덕이 문제다. 


구담 형은 장구를 즐겨 쳤고무용 형은 북을 두드렸다.가장 먼저 떠난 자명고 형은 내게 팝을 들려주었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더라!”


이웃 빈 농장에 들렸다가 돌아온 장모 말이다. 순환이라는 고리가 무한히 이어지는 세계를 살면서 오고 가고 또 떠나보내지만 현실을 마냥 받아들이기 녹록하지 않다. 글쎄다. 남은 생에 분리수거할 것이 있을까. 미련한 애착이 또 부채질이다. 그러나 막상 녹슨 현실은 녹물만 흐르게 한다. 황사라도 좋으니 봄이 그립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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