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를 결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이런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았다.
“혼자 가면 외롭지 않겠어?”
그러면 나는 그때마다 답했다. “외로우려고 가는 거야.”
외롭고 싶었다기보다, 외로움을 느긋하게 느낄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2년 전, 남편은 ‘성격 차이’를 이유로 내게 이혼을 요구했다. 서류상 남남인 사실혼 관계였기에 나는 결국 무력하게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달 후, 결혼 생활 6개월간 지속되고 있었던 그의 부정행위를 알게 되었다. 당시 배우자의 외도 사실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는 것이었다. 세상이 무너졌어도 출근은 해야 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남몰래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다가도 회사에 도착하면 마주치는 사람들과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동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을 땐 뻣뻣한 얼굴 근육을 쥐어짜며 웃는 표정을 지었다. 내 사정을 모두 아는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씩씩한 척 더 밝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참 이상한 날들이었다.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남들 앞에서는 밝고 씩씩한 자아로, 혼자 있을 땐 깊은 우울감에 허덕이는 자아로. 상황에 맞게 나는 그 두 개의 자아를 갈아 끼웠다. 그리고 지쳐갔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나는 점점 그들로부터 달아나 혼자 있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쓰는데 나는 그 마음을 고맙게 받을 수 없으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럴수록 나는 더 달아났다. 조금씩 멀리, 더 멀리. 그리고 그 끝에 제주가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산책을 하고 혼자 여행을 했다.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나눌 사람도, 그때 느끼는 황홀함과 즐거운 감정 따위를 공유할 사람도 없었다. 그 사실이 한없이 외롭게 느껴졌고 처음에는 그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보내는 일상에 익숙해지자, 곧 자유가 찾아왔다.
혼자라는 것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낄 자유를 의미했다. 우울할 때 우울할 자유, 쓸쓸할 때 쓸쓸할 자유, 슬플 때 슬플 자유,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을 자유. 내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고 온전히 마주할 자유. 이곳에서 혼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간 숨겨두었던 감정들을 충분히 마주할 자유를 얻었다. ‘밝은 척, 아무 일 없는 척’하느라 황급히 아무렇게나 구겨 넣고 묻어두었던 감정들. 바다를 바라보거나,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그것들이 불쑥 찾아오면 나는 그 감정을 더 꺼내어 가만히 마주했다. 충분히 느끼고 달랜 뒤 파도가 만드는 포말과 함께 부수어 보내기도 하고, 세찬 바람에 실어 보내기도 하고, 글에 담아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홀로 시간을 보낸 지 3개월이 흘렀다. 살이 타들어 갈 듯한 강렬한 태양과 숨 막히는 습기를 머금은 7월의 제주는 나날이 여름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카페들은 시원한 빙수를 개시했다. 마트에는 탐스러운 수박이 산처럼 쌓여 있다. 달달한 시식용 수박을 먹으며 사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만 그냥 지나친다. 혼자인 내게 거대한 수박 한 통은 부담이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돌렸다.
‘아차, 내게도 수박을 나누어 먹을 사람들이 생겼지.’
마트에서 사 온 수박을 먹기 좋게 잘라 두 통에 나누어 담았다. 그중 한 통을 들고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카페를 찾았다. 동료들은 빨간 수분이 가득한 과육을 한가득 입에 넣고 올해 첫 수박이라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에 온기가 번졌다.
나는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박 한 통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행복을 되찾고 있다. 수박 한 조각을 먹으며 상상했다. 내년 여름, 가족들과 거실에 모여 입 안 가득 수박을 베어 물고 미소 짓고 있을 내 모습을, 그리고 그 빨간 과즙에 담겨 있을 충만한 행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