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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불안해도 괜찮아

by 은도

제주에 내려온 후,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정말 부럽다”라는 말. 그들이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지하철에 갇혀 수백 명과 탁한 숨을 공유할 때, 나는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숲속을 거닐었다. 그들이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삭막한 소음을 들을 때, 나는 섬휘파람새의 경쾌한 지저귐을 들었다. 그들의 눈이 모니터 청색광에 고통받을 때, 내 눈은 푸른 바다를 지나 저 멀리 수평선을 내다보았다. 그런 내 일상을 그들은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단체 채팅방에서 친구들은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갈 곳과 할 일이 있는 안정적인 그 일상이 부러웠다. 그들은 중력의 보호 아래 단단히 발을 딛고 걸어가는 듯했고, 나는 그 주변을 무중력 상태로 떠도는 듯했다. 상쾌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스며들어와 숨통을 조이는 것이 있었다. 이따금 발밑이 불쑥 흔들리고, 속이 울렁이는 듯한 감각이 덮쳐왔다. 그것은 ‘불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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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이후 16년 동안 내 삶의 목적은 ‘쓸모’였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생각이 나를 나아가게 한 힘이었다. 성적으로, 자기소개서로, 스펙으로 내 쓸모를 증명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며, 취업을 하며, 승진을 하며 내 쓸모를 인정받았다. 나를 설명해 줄 명함이 없어지고 자연인이 되자 그 어디에서도 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사회 그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다는 것, 내가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일도 없다는 것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꿈꾸었던 자유는 막상 손에 넣자 감당되지 않았다. 이미 물로 가득 찬 입에 끊임없이 물을 들이붓는 느낌이었다. 과하도록 넘치는 자유가 도리어 나를 옥죌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다.


한심했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일상을 누리면서 그것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맥없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 그리고 우스웠다. 다르게 살아보겠다며 스스로 놓은 명함을 이제는 아쉬워하는 간사함이. 이대로 불안에 잠식당해 어렵게 얻은 이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불안과 싸워 이겨보자며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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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방법은 책에서 지혜를 구하는 것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나와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겪어본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인간 사회 역사를 따라가며 불안에 대한 근원적인 원인을 이해하게 되었고, 공감과 위로를 얻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여전히 불안했다.


다음으로 선택한 방법은 자연으로의 도피. 자연 속에 있으면 명함이 없어도 괜찮았다. 척박한 땅에서 고투하며 살아남았을 이름 모를 풀들을 보면 모든 생명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고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활한 바다 앞에서 나는 한낱 모래 알갱이처럼 느껴지고 내 불안도 하찮은 먼지처럼 느껴졌다. 자연에서 나는 쓸모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 속에서 나는 풀처럼, 새처럼, 돌처럼 그냥 존재하고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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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으로서의 내 존재를 조금 인정하게 되었다고 불안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휴대폰 액정에 손가락 몇 번 스치기만 해도 사람들은 도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쓸모를 증명하고 있다. SNS에서, 유튜브 영상에서, 인터넷 기사에서, 나는 그들의 존재감에 눌려 내 존재가 희미해짐을 느끼곤 한다. 그러면 곧 불안도 스멀스멀 번지곤 한다.


불안과 함께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래도 달라지고 있는 것은 스스로 내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운동으로 에너지를 채우고 짧은 글쓰기로 충만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미뤄두었던 한국사 공부도 시작했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되지만 마음만은 개운한 육체노동의 참맛을 체험하고 있다. 저녁에는 나를 위한 정성스러운 한 끼를 만들어 먹고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다운 일들로 온전히 내게 맡겨진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꾸려 나가는 것, 불안에 맞서 내 존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의무라는 안전장치 없이 자유라는 허허벌판에 내던져지고 나서야 나는 지금까지 오롯이 나로서만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그걸 깨닫게 했고, 이내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내 삶을 흔드는 불안과 싸워 그 존재를 없애고자 했지만 내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나는 불안을 없앨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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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생에서 불안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그 불안을 삶의 원동력으로 이용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불안과 싸워 이기는 방법이 아닐까. 내일도 나는 최선을 다해 내 하루를 꾸릴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나를 만들고 나를 인정하며 불안에 맞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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