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고 눈 오고 바닥이 얼었던 그 날들
편도 93km가량을 1시간 넘게 가야 했다. 겨울에는 눈도 비도 많은 동네라 더 조심스러웠다. 88 고속도로를 접어드니 가느다란 왕복 2차선 도로가 펼쳐졌다. 길 건너편 너른 마당을 끼고 앉은 가게들이 보였다. 그 마당엔 눈이 살얼음처럼 쌓여 있었다. 아직 한참을 가야 하는 길이다. 거창읍으로 내려 다시 무주방향의 고제면으로 가야 한다.
이른 아침, 아직 햇살이 떠오르지 않았고 차량이 많지 않은 길이어선지 바닥이 다시 얼고 있었다. 한두 개비 눈발이 뿌려지는 찰나, 중앙 분리선인 노란 선 너머로 저쪽에서 시외버스가 내려오고 있었다. 4~50도가량 경사면을 버스와 승용차 두어 대가 내려오고, 나는 오르막길을 가는 중이었다.
'빙판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으면 안 된다'는 말을 새기며 핸들을 바르게 꼭 쥐었다. 드디어 커다란 버스가 가까이 오는 즈음 내 차의 타이어가 이상했다. 핸들 잡은 대로 앞으로만 가면 되는데, 곧 버스가 지나칠 텐데 미끄러지고 있었다. 순간! 내 차가 버스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이대로면 버스를 박는다. 버스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버스 옆면을 박을 것이라고 기사님도 예견하는 듯했다.
그런데!
미끄러져 부딪칠 것 같은 순간, 차량이 오른쪽으로 미끄러져갔다. 순식간에 방향을 틀며 차가 우측 비탈의 옹벽을 들이받고 쿵! 앞 타이어 하나를 빗물받이 틈에 걸치고 멈추었다. 덜덜 떨렸다. 뒷 차가 와서 들이받을 것 같았다.
그때 나이 삼십 대 초반. 아침 6시에 아이와 빠이빠이를 나누고 출근길에 올라 아직 해도 뜨기 전이었다. 요즘 같았으면 경찰이 왔거나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운전을 배우고 처음 겪어본 일이었다. 덜덜 떨며 후진을 하니 차가 또 말은 들었다.
4륜차여서 가능했을까. 그 차를 끌고 학교로 갔다. 출근을 해야 하니까. 가는 내내 작은 소음이 발생했지만 그렇게 간 학교에서 난리가 났다. '이래 가지고 왔냐고'. 무용담을 몇 번을 소개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비어있는 분교장실에 들어가 조금 울었다.
당시 시골 소규모 학교라고 폐교대상 명단에 늘 오르내리던 그 학교는 다행히 아직 건재하고 있다. 무주로 넘어가는 고개의 아랫동네, 거창 고제면에 있는 중학교다. 7급 승진하면서 경상남도에서 가장 먼 곳으로, 자칭 경남에서 뽑혀 발령받은 학교다.
학교 뒷산 먼당에 물탱크를 파고 산의 물을 받아 내려서 식수로 사용하던 학교. 행정실 한가운데 화덕 난로를 설치하고 오래된 캐비닛들은 문이 닫히지도 않던 학교. 그 캐비닛에서 70년대 등사지로 시험 문제지를 밀던 유물도 발견했고 가을에는 운동장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끝내주게 예뻤던 학교다. 그 운동장에서 소나무 과의 잣나무도 처음 보았다. 정말로 솔방울 같은데 그 안에 잣이 있었다.
그날들이 있었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땅이 얼어붙었던 날들.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어도 차가 이쪽저쪽으로 미끄러지던 그날들은 또 갔다. 미끄러지고 부딪친 차를 끌고 출근했는데 다시 내려오지 못하여 데리러 왔던 시아버지와 신랑을 따라 내려왔었다. 한동안 비만 와도 빙판길 같았던 느낌도 이제 잊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순간도 지나간다.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줬으리라. 한 순간도 그저 있지 않기에 고맙고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