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풍이었을까? 초등학교 소풍날이었다. 초등학교 행정실에 발령받고 두어 달 뒤였다. 소풍을 따라나섰다. 그때는 유치원생과 저학년 고학년을 나누어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갔다. 아이들이 알록달록 차려입고 신나게 떠나는 날,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반별로 놀이도 하고 단체 장기자랑도 있었다. 한 폭의 그림같이 기억에 남아있다.
유치원과 특수학급이 있어서 면지역에서는 제법 큰 학교였다. 고등학교 행정실에 있다가 처음으로 '서무책임자'로 갔다. 인근 초등보다 학급수가 많아 '사무보조원'이 있는 학교였다. 그런데 동일자로 나와 같이 발령받은 사무보조원은 조리원에서 이직하여 처음 행정을 하게 된 분이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의 문서 시스템은 처음이라 우리는 첫날부터 그야말로 의기투합해야 했다.
전화도 많이 오고, 쉬는 시간에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수시로 방문했다. 무엇보다 공문 접수를 해야 일이 되는데 처음인지라 다급함은 큰 뱃심을 요구했다. 인근학교에 전화해서 컴퓨터 화면 단계별로 하나하나 배워가며 공문 접수를 하시던 사무보조원은 굉장히 성실한 분이었다. 유치원생을 실어 나르는 스쿨버스 기사도 있었고 영양사와 조리사 외에도 급식종사원이 다섯 명 있었다. 초등학교 행정실의 규모는 의외로 컸다. 가을 소풍을 구경하고 겨울에 승진하면서 1년을 못 채우고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지만, 그 학교에서의 추억은 살면서 자주 떠올랐다.
가까운 산이나 공원 같은 소풍의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으로 이동한다. 넓고 탁 트인 자리에 둥글게 둥글게 모여 앉아 제각기 싸 온 도시락을 먹는 시간이 소풍의 하이라이트였다. 담임을 찾아오고 담임이 학생들을 챙기는 시간, 행정실 직원들은 열 외였다. '우린 무얼 하나?' 처음 따라나선 소풍이었다. 그때 난데없이 '실과들은 이쪽으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까맣고 키가 훌쭉하시던 체육 선생님이 컴퓨터 선생님과 보건교사와 함께 행정실 직원들을 불렀던 것이다. 실과? 웃음이 터졌다. 모두 '실과는 이쪽으로~'를 외며 몰려갔다. 함께 참석하고 모여 앉아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지켜주는 가이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풍날이면 담임 선생님은 인기가 많았다. 일명 비담임과 실과들은 그렇게 모여서 소풍을 즐겼다. 영양사와 조리사, 조리원과 운전원을 포함하여 행정실 직원들에게 어울림을 주선한 선생님들도 스스로 실과라고 하며 같이 어울렸다.
그때 직원들과 선생님들의 이름도 잊었지만 초등학교에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늘 작은 일도 돕고 함께하고 칭찬하는 분이 많았다. 아이들을 대해서 그런지, 늘 말씀들이 공손하고 덕담이 많았다. 덕분에 좌충우돌 둘이서 일하는 행정실은 잘 굴러갔다. 그 학교를 떠나서도 간간이 그분들이 떠올랐으니, 칭찬하고 치켜세워주는 말을 그때 배웠는지 모른다. 은연중에 그 어른들을 닮으려고 해 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