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옮긴 부서는 도회지 한가운데에 있는 캠퍼스다. 빽빽한 건물 사이에 연못이 있고 자칭 '쥐라기 공원'이라고 팻말을 단 데는 나무가 울창하여 한 여름에 햇살이 덜 들었다. 거기에 정자를 조성하여 동네 어른들이 쉴 수 있게 해 놓았다.
매일 아침 삼십여분 가량 걷고 건물 여기저기를 돌아본다. 이른 출근엔 그런 여유가 생긴다. 오래전에 지었을 구 본부 건물은 3층이다. 학교 진입로를 직선으로 마주하고 그 앞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회전 로터리를 안고 앉아있다. 딱 거기가 본부 건물 같은데 자세히 보면 그 건물은 강의실로 사용하고 신 본부는 그 옆에 붙여서 증축했다.
신 건물 입구는 유리문이다. 가운데 대형 자동유리문은 늘 맞닿아 닫혀있고 양 옆에 2개의 문이 주로 사용된다. 그중 오른쪽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바로 앞에 이동식 사각 부스가 있었다. 그 안에 키 큰 양란은 꽃이 한창 필 때 설치된 듯했다. 꽃은 진지 오래고 잎사만 말라가는 화분이 사각부스 안에 있었다. 그 위치가 들어서는 사람의 동선을 방해하고 있었다. 중앙의 자동문 위치를 비켜서 어중간한 위치에서 오른쪽 문을 들어서는 사람들 앞에 놓인 것이다. 들어서자마자 시선도 동선도 막힌다. 말라 시들어가는 화분이 말이다. 어느 날 안내 창구에 화분을 치우거나 넓은 뒤쪽으로 옮기면 어떻겠냐고 했다. 떨떠름하던 분은 내 소속을 묻고는 소관부서에 질의하겠다고 했다. 두어 날 지나고서 보니 사각부스는 아예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누구나 지나치는 넓은 중앙 홀에는 또 다른 커다란 구조물이 있었다. 통합 이전의 구 대학의 1층 평면도 안내판이었다. 만 2년이 흘러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중앙 홀의 뒤편으로 우측 벽에는 대학 후원자를 명시한 곳이 있다. 그 앞에 묵직한 안내판은 점자까지 표기되어 있는 철재 안내판이었다. 혼자 이동시키기 어려운 크기였다. 그런데 그 안내판은 현제의 구조도가 아니므로 당연히 치워져야 했다. 아무도 보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나 보다. 안내부스에 계시는 분에게 또 확인을 요청했다.
"아 그렇네요 맞네요." 그분도 황당해했다. 이번에도 해당부서에 연락해서 조치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그 안내판은 없어졌다. 만 사람이 드나드는 중앙 현관에서 동선을 막으며 석화가 되어가던 화분을 이동시키고 현제와 맞지 않은 안내 표지판을 이동시켰다. 내가 이곳으로 발령받아 오지 않았다면 그 설치물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을까.
하루 온종일 지나다니는 직원이 몇 명인가. 그들 중에 오롯한 주인이 없었다는 뜻이다. 누구도 주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명색이 대학 본부 건물인데, 하루에 드나드는 사람이 몇인데, 외부인이 눈여겨보았다면 얼마나 큰 우사가 될뻔했나. 해당 부서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얼마나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지 보여준다. 내 사는 곳에, 내 일하는 곳에 최소한의 관심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 관심은 여유라기보다 사랑이다. 내 일터에 대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