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거든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정화수 떠놓고 빌어주던 엄마의 마음이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꽃이 되고 잎이 되겠다는 생각을 자기가 한다면 순진한 마음이다. 만남의 연속인 생활 속에서 그런 꿈은 위험하기 조차 하기에 간혹은 물이 흘러가는 대로 둬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문 밖에 나서면 바람조차 옷자락을 흔든다. 조금만 자세히 보아도 이전투구의 세상. 그 속에서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다행스러운 일이고 준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서 받은 상처를 무난히 넘길 수 있다면 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는 일은 간혹 기대되고 스릴 있는 반면 엄청난 파고로 오는 수가 있다. 너무나 다양한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하지 안 든 우리는 사람을 만난다. 대면으로 문서로 유선으로 책으로. 그중에 그래도 가려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책 속에서 만나는 일이다.
주말 아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잘 보내는 것도 슬기로운 일이다. 물건도 사람도 시간도.'
살아온 날 만큼이나 쌓이는 물건들과 아는 사람들 그리고 보낸 시간들. 그중에는 아무리 먼저 헤아리려 해도 불편하고 편하지 않은 감정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 입는 상처를 최대한 작게 하는 방법에 사람들은 골몰한다. '틀렸다 하지 말고 다르다 하고 다름으로 인정해 주라, 그것도 안되면 그저 비켜가라'하기도 한다.
비켜가는 사람들이 보낸 세월만큼이나 많아진다. 나와 아주 많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 그런 순간들이 올 때마다 씁쓸하다. 생활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가야 하니 스스로 깨달은 작은 위로로 힘을 낸다. '잘 보내는 것도 슬기로운 일이니 물건도 사람도 시간도 잘 보내보자'.
오롯이 내편일 수 있는 부모님 외에 그래도 나를 지지해 주는 벗은 책이다. 아무 말 없이 돌아보고 기다리고 길을 알려줄 것 같다. 무언가를 펼치고 끼적거리는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잘 보내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숱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간을 물 흐르듯 버려두고 때로는 가는 사람 잘 가게 도와주는 방법을 찾는 일 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