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 님의 글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의 서두와 본말들 중에 줄을 치며 다시 읽은 글들을 정리해 봅니다. 책의 마지막 단락은 전편 (1)에서 감상을 적었습니다.
'글을 배워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라고 합니다. 독일어를 배워 괴테를 평생 읽고 연구하며 그 뜻을 전하려 애쓴 저자의 마음이 속속 배어 있습니다.
머리말
괴테의 편지들, 그는 어떤 인물이었던가! 나누고 싶었다.
몸말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마음속의 솟구침을 담은 단어.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주문이나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는 둘 다 비문이다. 뒤집어보면 지금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곧 갈 곳이, 목표가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는 것. 지금 방황해도 괜찮아. 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언젠가 어디인가에 닿아. 그런 쉬운 말보다 말이 될 듯 말 듯한 이 위로가 주는 여운이 크다.
인간은 늘 무엇인가에 추동되어 살아간다. 모든 것을 세상 탓이라고 밀쳐놓고 자신을 피해자의 자리로 옮겨놓고 그 자리를 요지부동으로 고수하면서 어딘가를 향해 목청 높이는 삶은 또 얼마나 옹색하고 불행한가. 자신을 빚어나가는 일을 할 사람은 자기다.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그 아름다운 호기심, 오래 가지고 가보면 어떨까. 지식욕을 잃지 않는 삶은 어떨까.
괴테는 시간의 사용법도 적어두고 있다. /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건 초조, 더더욱 쓸모없는 건 후회, 초조는 있는 죄를 늘이고, 후회는 새 죄를 만들어 낸다. / 현재를 즐겨야 한다. 특히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며 미래는 신에게 맡겨야 한다. / 무언가를 비난하기에는 나는 너무 늙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행할 만큼은 충분히 젊다.
한동안 매일 아침 도서관을 다녔다. "독일이라고 장애인이 더 많겠어요. 여긴 장애인들이 밖에서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거죠. 불편 없이." 왜 우리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게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 /가슴 열렸을 그때만 땅은 아름답다./ 괴테 오솔길 초입, /그대 그토록 찌푸리고 서 있었으니, 바라볼 줄을 몰랐구나/ 열림이란 다름의 인정이고 다양성의 수용이다.
괴테 자신이 사랑 안에 깃들어 살고, 지향이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에게 밀려오는 것들에 그저 치이지 않고 그 가운데서 즐길 줄도 알았던 것. / 조개들이 살을 껍질 밖으로 펼쳐낼 때 물에 뜨듯이, 그렇게 나는 사는 걸 배운다./ 언제나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서 그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사고를 유연하게 열고 옮길 수 있는 힘, 그런 힘이 진정 큰 힘인 것.
/학문과 예술을 가진 자, 종교도 가진 것이다. 저 둘을 가지지 못한 자, 종교를 가져라./ 그럼 종교를 가졌으면 예술과 학문도 다 가진 것이지요?(어느 꼬마의 질문). 통일은 많은 사람들이 꾸준한 관심을 가질수록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는 일. 모든 일은 가슴을 열어젖히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세상, 정확한 인식만이 유일한 대안.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대가 옳지 않은 것이고, 감사할 줄 안다면, 그대 형편이 좋지 않은 것/ 이 구절이 이해 안 되시면 행복한 분. 감사할 줄 알면 네가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것. 진정으로 감사하고 섭리까지 헤아려볼 수 있는 힘,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얻는 것 같다.
괴테는 젊음이 취기라 했다. /취해야 하리, 우리 모두! 술 없이도 취하는 게 젊음./ 오늘날의 세계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복잡하게 뒤엉켜 폭발할 듯 위태롭다. '문학'이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그 갈피의 아픔까지 봄으로써 사람들을 이어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곤 한다.
마리아네가 괴테에게 보낸 편지들, 긴 세월을 고이 간직했다가 임종을 1년 앞두고 정성스레 묶어서 돌려보냈다. /사랑스럽던 이의 눈앞으로- 이걸 썼던 손길에게로- 언젠가 뜨거운 갈망으로 기다리고 받던 것 - 그것들이 솟구쳤던 가슴에로- 이 종이들은 돌아가거라. 늘 사랑에 가득 차 거기 있던 것,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의 증인들./
뜻을 가지면 사람이 어떤 높이와 넓이에 이를 수 있는지, 또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물 예 하나를 젊은이들을 위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 그런 한 인물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의 모델. 괴테마을. 작은 숲 속 마을. 책 오두막.
'익히는 데 평생이 걸린 글들을 저만 혼자 읽고 그냥 들고 가버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어디서든, 장엄한 자연 속이면 더더욱,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아름답다. 그것이 인간과 그 공동체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면 더더욱 그렇지요. 만난 것이 굳이 운명까지는 아니어도, 스스로 느낀 그 어떤 기쁨과 놀라움을 평생의 업으로 이어가는 것이라면, 그런 지혜를 확인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정말 많은 작품을 써낼 수 있었던 그 초인적 성취의 원동력이 시대에 대한 고뇌가 아니었던가. 손 놓지 말고. 정치인들부터 부디 주판을 내려놓고 사심 없이 의논하고 지혜를 모아야. 우리의 뜻에다 꾸준함을 더해야. 각자 자기 일을 성심껏 해가는 것. 선순환.
글의 힘. 아직도 때로는 세상을 움직이기도 하는 글의 힘. 돌아보면 글을 배워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여백서원: 책이 가득하다. 책도 읽지만 숨 한번 돌리며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도 담았고 흰빛 같이 맑은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집이다. 릴케를 읽고 헤세를 읽었기에 나중에 대학교도 독문과로 갔다. 번역까지 해가며 읽은 책, 매번 하나의 세계가 열려 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