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삶이든, 스토너처럼 인내하는 삶이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똑같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1960년대에 미주리 대학교 영문과 조교수의 삶을 그린 실화 소설이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직장에서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일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또한 한 인생을 들여다 보고 관조해 볼 수 있는 점에서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아주 많았다.
얼마 전 배우 이선균의 소식을 들었을 때 손을 놓고 귀를 의심했다. '아니 왜! 좀 버텨주지' 질문과 바람이 이어 나왔지만 각자가 느끼는 삶의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서든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힘, 스스로를 세우는 힘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았다. 그건 참 무척이나 어렵지만.
새벽부터 온종일 농사일을 하여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시골 농부의 아들이었다. 부모는 19살이 된 아들을 미주리주 대학 농과대학에 보낸다. 농사일은 어떻게든 어머니와 하겠다고. 그렇게 신입생이 되어 대학에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은 낯설었다.
그 대학에서 평생을 보내게 된다. 농과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농사를 지을 줄 알았던 아들은 철학과 문학에 빠져 2학년 때 스스로 문학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문학과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은사는 말했다. 대학에 남아 연이어 공부를 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버지는 거듭된 주먹질을 받아들이는 돌덩이처럼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네 어머니랑 나는 언제나 너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공부를 해야겠거든 그렇게 해야지. 내 어머니랑 나는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다.'
이후 부모님은 그의 졸업식과 결혼식에 오시고 각자의 장례식에서 아들을 만난다. 19살에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그렇게 먼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려지는 그와 부모님의 모습이 무척 애잔하다.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가는 주인공 스토너의 삶도 무척 고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그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주어졌지만 공간 묘사와 심리묘사가 그런 그를 따라가도록 독자를 붙들어 맨다.
젊은 스토너는 어느 날 문득 파티에서 만난 여성에게 반하여 청혼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한다. 아 결혼식에 온 부모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 만큼이나 스토너는 '결혼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이야기를 구경하는 사람은 어떠한 격려도 조언도 할 수 없어 안타까워진다. 하지만 윌리엄 스토너는 일평생 자신의 선택에 헌신한다.
이 소설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아주 오래전에 한번 읽었음에도 도대체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고 또 너무 잘 읽혔고 대학의 이야기였고 바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같아서였을 것이다. '항상 연구를 하고 글을 썼다'는 스토너의 독백과 '책을 썼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경이가 느껴졌다'는 말 그리고 책을 쓰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는 자문이 예전보다 더 이해가 된 덕분이기도 하겠다.
'로마의 서정시인들은 무(無)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 살면서 즐겼던 풍요로움에 바치는 공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강의 내용에 완전히 몰입한 나머지 자신의 무능력은 물론 자기 자신과 눈앞의 학생들까지 잊어버리는 경험을 종종 했다.'
'대학이 소외된 자, 불구가 된 자들이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라면 우리가 허락한다면 우리도 세상과 똑같이 비현실적이고...'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박사과정생이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스토너가 한 말이다.
이 말로 인하여 이십여 년을 단과대학 내에서 소외되고 왕따를 당하게 된다. 그런 스토너를 소외시키고 왕따 시키는 후배이면서 학과장을 맡게 된 동료교수의 항변을 보며 그 억지 논리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억지를 만들어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늘 존재했던 것이다.
그 모든 것에서 초월하여 스토너는 오로지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한다. 학문에 깊이가 더 해졌을 때의 표현이다. '마음만 먹으면 몸에서 의식을 분리시킬 수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을 걱정하는 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부교수인 자신에게 시간강사도 거절할 시간표를 맡기면서 소외시켰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스토너는 적절한 대응으로 기존에 맡았던 고학년과 대학원생 수업을 맡게 된다. 단지 강의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진심과 태도로 상황은 바뀐다. 저들을 굴복시킨 것이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가정에서조차 불우했던 스토너가 20세 연하의 연정을 만나게 되는 부분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이디스(처)나 그레이스(딸)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살아온 배경이나 문화가 달라서일까. 가족이 된다 해도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한 대화조차 쉽지 않은 이디스는 가정에서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니 더 편하게 대해준다.
'층층나무들은 흐드러지게 핀 꽃을 매단 채 엷은 구름처럼 가볍게 흔들렸다. 생명이 꺼져가는 라일락꽃의 달콤한 향기가 사방을 흠뻑 적셨다.'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향해 조금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눈앞의 급박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았다.' '권태와 무관심 덕분에 얻어낸 승리' 스토너의 긴 인생에서 신기할 정도로 그 부인인 이디스의 행동은 외 떨어진다. 그러나 스토너는 '그녀의 말을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고 저주를 퍼부어대면 그는 정중하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분노 고뇌 고함 증오에 찬 침묵 등을 모두 남의 일처럼 바라보았다.' 태어난 딸아이를 방치할 때 스토너가 기저귀를 갈고 밥을 해먹이고 집안을 치우며 살아왔던 것처럼.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아처 슬론(은사)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처)에게, 캐서린에게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난 살아있어.'
'스토너는 이렇게 세월이 흐른 마당에 로맥스(후배 교수이면서 학과장이 되어 평생 괴롭히던 사람)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문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간혹 로맥스 같은 이들을 만난다. 무감각하게 무심하게 초연하게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은 어쩌면 한 발 뒤로 물러날 수 있었기에 불필요한 급박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평선 너머로 살짝 넘어간 늦은 오후의 태양이 서쪽의 나무들과 집들 위에 긴 잔물결처럼 걸려 있는 구름 아래쪽을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파리 한 마리가 창문 방충망에서 윙윙거리고, 옆집 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적막한 허공에 걸려 있었다.'
암 진단을 받고 돌아온 스토너에게 그 부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아, 윌리! 당신 속이 다 먹혀버렸대요.' 위로나 배려 같은 것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스토너의 오랜 친구가 병문안을 와서 안색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하는데 정신이 혼미한 스토너 앞에서 부인은 이런 말도 한다. '이 사람 안색은 엉망이에요. 가엾은 윌리, 이제 우리 곁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실패,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그런 생각은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원한다면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묘사와 표현을 따라가다가 줄거리를 읽게 되고 감동하면서 무언가 위로를 받은 것 같다. 길지만 책에서 내용을 옮겨본 이유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우호적일 수만은 없기에 실화같은 실화를 들으면서 느끼는 여운은 크다.
스토너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 그는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옮긴이 김승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