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TV에 간혹 방영된다. 연예인들이 그들의 생활을 밀착 취재하며 먹거리와 주거시설까지 보여주었다. TV 앞에 퍼질러 앉아 눈을 의심하며 바닥을 치는 세대지만 시청자들은 얼마만큼 볼까 싶었다. 먼 나라 이야기로만 볼 것이다. 내 부모 조부모 세대 일 같아서 나는 볼 때마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남해군에 있는 언니가 전해준 책이다. 백시종 님의 자전적 소설 '쑥 떡'을 처음 받았을 때 제목이 독특했다. '쑥떡쑥떡' 그 쑥떡인가? 언젠가 아주 어릴 때 집에서 엄마가 해주셨던 그 쑥 떡을 말하는 건가?
'쑥 떡' 책 내용은 '먹거리 고해성사'라고 했다. 여든을 앞둔 저자가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결핍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가슴 저린 이야기다. 그 쑥 떡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눈물 콧물을 관통하는 통증에 감전되어 내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먹거리 걱정이 없는 지금이 더없이 고맙고 소중해진다.
'눈물과 함께 먹은 삼계탕'에서는 애잔했다.
'먹보' '껄떡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곰팡이꽃 핀 쑥떡'에서는 시공을 초월할 수만 있다면 그 '진섭'이를 안 고와서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고 우섭이에게 맛난 것을 마음껏 사주고 싶었다. 내 부모와 나의 유년이 투영되어서다.
'통무김치와 보리밥' 그리고 '마가린 간장 비빔밥'은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까지의 빈곤하고 절박한 모습 그리고 시대의 아픔도 절절이 느낄 수 있었다.
'당겨진 고무줄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내가 급하게 찾은 곳은 그 전라도 밥집이었다.'
'마지막 남는 자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자라고~ 살벌한 가시밭길을 넘어지지 않고 굳건히 지켜 갈 무기가 '적응'말고 무엇이 있단 말인가.'
저자는 그래도 복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진 대목은 '된장 콩잎과 배에서 말린 분홍빛 생선'이야기다. 얼마 전 남해 사는 언니가 '마른 생선을 좀 사주마. 가져가서 쪄 먹으라' 했었는데 저어했던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남의 집 며느리 이야기인데 괜스레 가슴에 남는 글 귀들이 있었다.
'부모를 섬기며 가족의 화평을 우선으로 여기는 어질고 선한 내 짝꿍'
'죄도 없고 착하고 선한 딸을 학대하고 미워했다는 어머니의 통성기도를 듣고도 지난날에 대해서 어머니의 태도 변화에 관해서도 가타부타 평가하지 않았다'는 그 며느리를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사는 사람 누구나 누군가의 며느리고 딸이고 아내고 어머니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 '소주와 뜨물로 삶은 호깃양고기'편에서는 실력 좋은 요리사 기능공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시절이든 어떤 조직이든 뭔가를 정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정말 잘 사용해야 함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주어진 권력이라면 권력일 수 있는 아주 작은 결정이 누군가의 목숨에 버금가는 일도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그 정도로 파급효과가 큼을 느꼈다.
아주 오래전 유년의 기억이 있다. 쑥과 쌀을 쪄서 치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시커먼 쑥떡 반죽에 대한 기억이다. 어느 한 해 우리 집에서 쑥떡을 한 것이다. 엄마가 콩고물을 그득하게 깔고 그 위에 커다랗고 뜨끈한 반죽을 부어주면 누군가가 조그맣게 잘라줬다. 고사리손의 우리 자매들이 둘러앉아 동그랗게 눌러서 콩고물에 둥글리면 그게 쑥떡이 되는 것이 신기했다. 하하 호호 배부르게 먹었을 것이다.
지금은 몇 알씩 편리하게 포장되어 쉬 구할 수 있는 그 쑥떡이 더 오래전에는 그나마 풍족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음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음식은 생사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제임에도 조금만 풍족해지면 너무 쉽게 여겨지고 선택되는 물질 같다. '음식은 축복'이라고 저자는 '입안에서 온갖 감각을 살려내는 그 에너지 자체가 살아 있음의 증표'라고 했다. 그렇기에 쉬 접하는 모든 음식에 고마움을 가져야 하듯이 제대로 공을 들여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음식은 생명줄과 마음줄 모두를 좌우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