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말은 중국의 작가 '위화'가 소설 '인생'의 서문에서 한 말이다. 이런 말도 한다.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사람이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과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에 관하여 썼다'는 소설 '인생'에서 저자는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방법이 이 책에 있을까 궁금했다.
설 연휴 틈틈이 읽었던 책, 옅은 침대 등에 비춰도 보고 자는 사람들을 깨울까 하여 불도 켜지 못한 아침에 아직 떠오르지 않은 아침 해 기운을 빌려 보았던 책이다. 줄 친 부분을 옮겨본다.
'푸구이'라는 노인이 자신의 생을 '그림을 그리듯 실감 나게 들여주었다.'라고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푸구이는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라고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또 한 번 그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 같았다.'라고 묘사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놓을 수 없었고저절로 책장이 넘어갔다. 누구나 사는 '인생' 이야기여서 그럴 테고 '푸구이' 그 노인의 '인생'이 궁금해서 그랬을 것이다.
푸구이는 천석 군 만석꾼의 집안을 아버지처럼 노름으로 탕진하는데 그 재산을 가로챈 룽얼이라는 자가 대지주로 공개 처형을 당한다.
'푸구이 너 대신 내가 죽는구나' 옛날에 아버지와 내가 집안을 말아먹지 않았다면 그날 사형당할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겠나.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야지'
내가 나 자신을 겁줄 필요는 없다. 옛말에 큰 재난을 당하고도 죽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있을 거라 했네.
햇빛이 이동하는 바람에 나무 그늘이 조용히 우리를 떠나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사람도 때가 되면 익어야 하는 법이라네. 배가 다 익으면 땅으로 떨어지듯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지.
푸성귀를 뜯다가 신발에 진흙이 묻으면 자전(아내)은 나를 불러 세워 진흙을 털어내라고 했지.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네. '다 늙어서 신발에 진흙 묻는 걸 신경 쓰나?'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사람은 늙어도 사람이잖아요. 자고로 사람은 깔끔해야 하는 법이라고요.'
'풀 한 포기가 바람에 흔들거리듯 평화로운 마음이 저 멀리서 꿈틀대는 걸 보았다. 사람들이 떠나간 들판은 막힘없이 널찍하게 펼쳐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광활하고,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이 석양 속에서 물처럼 빛살을 출렁였다.'
소가 우리 집에 온 이상 우리 식구나 마찬가지니 이름을 지어줘야 했어. 푸구이라 부르다 보니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나를 쏙 빼닮아 기분이 정말 째지더군.
천천히 들판은 고요 속에 잠기고, 사방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노을빛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나는 이제 곧 황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단단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자세다. 여인이 자기 아들딸을 부르듯이.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이.
소설에는 중국 격변의 시기 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 속에 휘말리는 농민들의 생활이 나온다. 아직 날이 풀리기도 전 식량이 떨어지고 소나무 껍질까지 벗겨 연명했던 우리 보릿고개가 떠오르는 모습이 절절하게 펼쳐진다. 지금이 얼마나 고마운지 감사함이 절로 났다.
문득 이광수의 소설 '꿈'이 생각났다. 한 생을 살아내고 이제까지의 잘못으로 교수형을 당할 때 놀라서 꿈을 깨는 이야기다. 그 꿈에게 깬 자는 반복되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푸구이라는 노인의 한 생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를 몰고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그 마음을 가늠해 보았다. 그 모진 풍파를 견뎌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주어진 생을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번이기에 남의 삶도 궁금하고 나의 삶에도 끝없이 의문을 가진다. '인생'의 저자 위화는 푸구이라는 한 노인을 통해서 스스로 자생할 수 있기를, 그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화두를 던진 것 같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라고. 그리고 힘을 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