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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조와 덕이 Jul 22. 2024

한 여름에 김장 이야기

 


오늘도 TV 홈쇼핑에서는 맛깔스러운 김치를 소개한다. 큼직한 포기김치가 김장을 방불케 한다. 무, 파, 갓 등이 켜켜이 올라간 먹음직스러운 배추김치를 보니 저절로 입맛이 돌았다. 동시에 신랑과 함께 커다란 김치통을 양손에 들고 엄마 집김장김치를 가지러 던 기억이 났다.


음식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연스럽게 김치가 떠올랐다. 밥상에서 기본이 되는 찬이라 김치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쯤 누구나  있것이다. 사람들 입맛이 변하고, 음식도 다양해졌고, 무엇보다 핵가족화로 김치 수요가 줄고 있다. 그럼에도 김치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음식임에 틀림없다.


겨울 초입이면 나도 김장을 한다. 15여 년은 넘은 것 같다. 어느 자리에선가, 내가 김장을 한다고 하니 젊은 친구가   "몇 포기나 하세요!" 물은 적이 있다.  포기 정도라 했더니 다들 웃었다. 농산물시장에 직접 가서 가장 큰  배추를 골라 네 등분하면 열 포기라도 그 양이 상당하다. 요즘은 형제자매들이 부모님 집에 모여 김장김치를 수백포기씩 담가 나눠 가져가고들 있다.


나도 친정엄마담근 김치를 줄곧 얻어 먹었다. 엄마가 더 이상 김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커다란 대야 서너 개를 내게 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게 필요한 사람은  너일 것 같다"


그때 '내 손으로 김치를 담가야지' 마음먹었다.


"김장하는 걸 왜 한 번도 안 보여주셨어요?" 엄마에게 물으니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늘 바쁜데 어찌 기다리느냐. 김장은 제때 해야 한다" 하셨다. 




영양사인 지인이 늘 하던 말이 있다. 가을 햇살에 기른 무와 배추가 가장 달다고, 봄 여름에는 벌레가 많아 농약을 많이 뿌리고,  여름 배추는 맛이 써서 설탕을 많이 넣어 담글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분이 한 말 중에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건 '엄마가 건강한 가을채소로 김장을 담그면 가족이 년 내내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처음엔 배추 한 포기로  막김치를 담았다. 절이고 씻는데 손이 많이 가서 배추 꽁지만 잘라서 잎사귀채로 절여봤다. 씻고 건지기가 훨씬 쉬웠다. 한 포기가 세 포기로 늘어나면서 양념을 가늠할 수 있었다. 드디어 여덟아홉 포기를 사 와서 처음으로 김장이란 걸 했다. 그 해 김장이 가장 맛있었다고 우린 회상한다. 그 감동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 집 김장에는 생새우를 갈아 넣는다. 마늘과 생강 새우젓 멸치젓을 준비하고 거기에 더하여 생새우를 넣어 시원한 맛을 다. 해를 넘겨 보관하는 김장은 밀가루 풀을 넣지 않는다. 잘못하면 내가 나기 때문이라고 엄마가 가르쳐 주셨다. 양념에 무채와 갓, 대파, 잔파 같은 채소가 들어가고, 사과 배는 물론 홍시도 넣는다. 육수를 내어 액젓과 갖은양념을 버무리는데, 그 육수가 집만의  비법인 듯하다.


어느 해인가는 멸치, 무, 양파, 대파, 표고에 상황버섯까지 넣어 육수를 냈다. 양념을 버무릴 때 매실액은 물론이고 불린 청각을 곱게 다져 넣었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김장은 온 가족의 행사가 될 수밖에 없다. 배추와 양념을 준비하여 씻고 다지고 배합하는 건 내 몫이지만 켜켜이 양념을 넣어 둥글게 말아 통에 담는 건 신랑의 역할이 크다. 아니 양념의 주 재료인 무채 썰기부터 신랑이 나선다. 처음부터 김장은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김장하는 날은 수육을 삶아 조촐한 가족 파티를 한다.




잦은 외식에 먹거리도 많아 김치 수요는 갈수록 줄어든다. 하지만 신랑과 단둘이 밥을 먹는 날이면 김치가 주 재료가 된다. 김치찌개는 물론이고 김치볶음밥이나 김치전도 부치고 간혹은 멸치, 콩나물을 넣은 김칫국을 끓이기도 한다. 김치는 늘 준비되어 있는 비상식량이다. 김장을 처음 하던 무렵에는 이 집 저 집 한쪽씩 나눠 주고 맛나다는 덕담에 신났는데 어느 틈엔가 멈췄다. 바쁜 생활 속에서 김치를 별로 반기지 않았다. 변해버린 식습관 탓일 것이다. 김장김장를 이웃과 나누던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게 아쉽다.


막 담근 생생한 김치가 오늘도 홈쇼핑과 동네 반찬가게에 넘쳐나지만, 가족이 어울려 만든 우리 집 김장김치 만 할까. 김치는 그 집의 성씨 같이 고유한 맛과 정성이 담겨있다. 한 때 중국이 김치를 자기들 것이라고 하여 전 국민이 웃었고, 바다 건너 민족이 '기무치'를 전 세계에 더 많이 팔고 있어 모두가 속상하기도 했다. 아무렴 우리 김치를 따라오겠는가. 소중한 우리 김치를 자자손손 이어가야 한다. 나부터라도 우리 집만의 김치를 만들어 내 아이들에게 전해줘야겠다.

                      

(10여 년 전쯤의 김장 준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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