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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꽃 Jul 31. 2024

아(픈) 밤 보낸 사연

활터 다녀온 날 


끙끙 앓아대는 소리에 제가 깼다. 의식이 들자마자 '아이고'와 '아야 아야'가 저절로 나왔다. '이래 가지고는 내일 못 가겠다'  '가만 급한 일이 뭐가 있지' 그 와중에 생각은 달려가고 있었다. 엊저녁 '명궁'을 만나 과한 연습을 한 게 탈이었다.


같은 정(활터)에 배정받은 동기가 다시 그 '명궁'님을 모신 것이었다. 퇴근하자마자 활터로 갔는데 낯선 선배들의 눈길이 버거울 즈음 동기가 왔다. 지난 주말 연세 드신 어른들에게 기수와 성명을 말하며 신고하지 않는다고 면박을 받은 반백살의 동기는 그래도 삐진 하루 만에 다시 나타났다. 일주일에 일곱에서 여덟 번 활터를 방문하는 그는 오늘 명궁이 온다고 같이 배우자 했다.


7월에 '궁도' 수료를 한 동기들은 시내에 있는 6개 정(활터)으로 흩어졌다. 다른 정은 입회원서를 쓰고 입회비를 내고 환영 파티도 했다는데 우리 정에 배정받은 세명은 아직 수습기간이다. 3개월 이후에야 정 회원으로 받을지 결정한단다. 그동안 인성을 본다는데 그야말로 신입 후보 셋은 신기한 얼룩말이 되었다.


처음 명궁에게 코칭을 받은 날은 한 손(5발) 쏘고 활터에 불이 켜질 즈음 귀가 했는데 어제는 조금 과하게 연습한 것이다. 하루 네 닷 손 정도 쏘았는데 일곱 손을 쏘았으니 마지막에는 팔이 떨려 당길 수가 없었다. 나보다 열 살쯤 위인 여성 선배 기수 한 분은 땀으로 샤워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명궁에게 코칭을 받으며 밤을 새울 기세였다.


3센티미터도 당겨지지 않던 활을 화살 키만큼 팽팽하게 당겨서 잔디밭 너머 145미터 앞에  있는 과녁을 맞히는 건 엄청난 희열을 준다. 활터에 서는 순간부터 자세며 호흡이며 손가락 위치 방향 등등 얼마나 고치고 배울게 많던지 매번 스펀지에 물먹듯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 일요일부터 이상하게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상처가 났다. 왜 그럴까 했었다.


그 이유를 명궁님이 말해줬다. 활을 당긴 오른손을 놓는 찰나 왼손 힘도 빠지면서 안으로 쏠리니 활이 나가면서 친 것이다. 활의 작은 깃이 자꾸 상처를 냈다. 드디어 피까지 보았다. 그만하고 싶은데 비상약으로 치료해 주고, 밴드를 발라주고, 누군가는 자신의 테이프를 감아주는 바람에 또 두 손을 더 놓고 말았다. 함빡 젖어 돌아와서 밤새 그리 앓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수십 년간 직장에 맞춰진 체력이 또 증명됐다. 평일 아침이면 멀쩡하게 살아난다. 옴 몸이 구겨진 종이 같은 느낌이었지만 펴가면서 출근했다.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가장 먼저 나왔다. 대신 저기 연못으로 저기 쥐라기 공원(학내 산림 구역)으로 산책은 못했다.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을 피해 얼른 들어선 건물이 고마웠다.


고해성사도 아니고 말이 길었다. 왜 이리도 길게 적었을꼬. 밤새 앓아도 제 좋으면 하는 것, 그게 취미다. 정말 좋아하는 취미다.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색다른 경험이 쌓이고 있다. 왠지 화살 다섯 개를 차고 활터에 서면 비장해진다. 활의 후예라서 그럴까. 다섯 발을 모두 정 중앙에 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활터에 선 모두가 그런 맘이 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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