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145미터 끝에 커다란 과녁이 보인다. 한 과녁에 나란히 서서 순서대로 한 발씩 날린다. '일시천금'이라고 활 하나하나가 천금만큼 소중하다. 5발을 차고 서서 자기 순서가 오면 오로지 혼자 활을 날려야 한다. 이제 가르쳐주는 사범도 없다. 팽팽하게 당긴 시위를 놓아야 날아간다. 정말 무섭다.
궁도교실을 수료하고 어제가 5번째 습사였다. 첫 방문에는 연습할 때처럼 5발만 챙겨가서 5발 쏘고(놓고) 와야 했다. 수료한 지 2주가 넘었는데 방문은 손에 꼽힌다. 거의 매일 습사 한 동기들은 과녁을 잘 맞히고 있었다. 그 커다란 과녁은 거리 때문 에라도 맞히기가 쉽지 않다.
한 번에 5발을 보내고 틈을 두어 쉬었다가 다시 5발을 낸다. 허리에 5발을 장전하고 한 과녁 앞에 7명이 서는데 경우에 따라 7명 이내로도 선다. 첫 방문에 '선례후궁'을 기억하며 선배들에게 인사하느라 활터(정)의 중간에 있는 정간(正間)에 예를 갖추는 목례는 잊고 말았다. 웃으며 다가서다가 제지당하고 다시 가서 목례를 해야 했다. 여러 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첫 활을 날리기 전에 '활 배우겠습니다'를 외면서 멀리 과녁을 향해 인사를 하는데 4번째까지 그 절차를 잊었다. 5번째 수업에서야 스스로 했으니 이제는 틀이 잡힐까. 145미터를 날아가는 활에 힘이 담기려면 궁력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
그 활을 조준해서 오른손에 잡은 활시위를 얼굴옆에 붙이고 당겨 놓아야만 활이 떠난다. 연습할 때 왼 팔이 현에 맞아 피를 흘리고 시퍼렇게 멍든 이도 많이 보았다. 오른쪽 손을 놓을 경우 활시위가 얼굴을 치고 귀를 때리기도 한다. 3번째 방문에서는 오른쪽 귀를 맞아 귀걸이를 공중에 날려버렸다. 물론 동기생만 아는 비밀이다.
그러니 활을 당기는 매 순간 얼마나 무섭겠나. 자세 호흡 정신집중이 어우러져야 하고 손가락 팔 위치에 따라 날아가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멈춘 호흡에서 양손으로 당기고 오른손을 놓기까지 그 과정이 주는 묘미가 사람들을 활터로 끄나 보다.
홀로라는 것을 자각하고 자신이 활을 놓는 순간을 결정해야 하는 것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이제 겨우 5번 활터에 갔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매 순간 벅찬 감정을 만난다.
활을 주으러(치러) 잔디밭을 걸어가고 걸어오고 햇살 받고 바람맞고 하늘 보며 감회에 젖는다. 어쩌다가 누가 나를 이리로 이끌었는지. 이런 순간이 내게 오다니. 마치 인생의 어중간한 위치에서 삶을 한번 돌아보라는 계기인 듯도 하다.
많이 쥐었다면 놓아야 하고 어떠한 일이든 팽팽한 힘을 풀어야 또 무언가가 시작된다. 얼떨결에 추천해 준 사람도 은인이고 들여다볼수록 동기분들도 큰 사람들이고 무엇보다 우리의 전통 활 국궁은 그 자체로 삶을 가르치는 기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