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푹푹 열기가 차오르는 한 낮인데도 바람이 불면 그 기운이 다르네요. 저녁에는 한 술 더 뜹니다. 지난주가 입추였고 다음 주에 또 처서가 있습니다. 뜨거운 기운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면 얼른 안으로 삼킵니다. '여름을 즐겨야지, 이 더위가 얼마나 가겠나. 가기 전에 마음껏 누리자!' 이럽니다.
어느 계절이 좋으냐는 질문은 앳된 학창 시절에나 많이 들었더군요. 하나 버릴 게 없는 사계절을 누리면서도 그 고마움을 모르고 젊은 날을 보냈네요. 사계절은 나누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멋도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잎 돋는 봄입니다. 그 봄도 긴긴 겨울이 지나야 만 옵니다. 새 잎이 돋아나면 여름 오기 전 연초록을 실컷 감상하자고 마음먹는답니다.
메말랐던 나무에 물이 올라 여린 잎사귀가 돋아나고 온갖 꽃이 피는 봄은 또 얼마나 휘황 찬란하던지요. 사람으로 치면 태어나 세상 천지도 모르고 쑥쑥 자라던 때가 봄 같습니다. 2~30대는 한 여름이고요. 아마도 가을은 면면이 물이 들어 내면이 깊어지는 4~60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가을에 만물은 잔치를 여는 것 같습니다. 자연의 모든 성장이 멈추는 겨울이 오기 전에 말이지요.
이제 가을입니다. 알록달록 물빛이 온 산을 감싸고 수많은 과실수가 열매를 맺습니다. 가을이면 냉장고 2~3대가 부족할 만큼 과실이 넘친다고 복에 겨운 비명을 지르는 이도 자주 보았습니다. 문득 내 인생의 가을은 어떤가 자문이 들었습니다. 거두어들일 게 많고 물들일 일만 남은 풍성한 과실수인가, 아니면 무성한 잎사귀뿐인가. 더위에 지쳐서 곧 다가올 계절, 가을이 그리워지는 즈음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전히 좀 더 대범하지 못해서 자책하는 소인배였다는 마음도 듭니다. 그래도 지금 나는 가을로 가고 있습니다.
한때는 나 홀로 잘 살아내는 방법을 찾겠노라고 외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보는 책들에서 그 답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외골수는 아닐까, 핑계를 대거나 비약하는 모습은 아니었나 싶은데 그게 아니라네요. 제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노력, 늘 사용하던 단어도 스스로 정의해 보는 것이 옳은 글쓰기이고,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홀로 하는 지금의 노력들이 성장하는 길이라고요. 애써 주위의 시선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이것들이 내가 찾던 홀로 살아내는 방법입니다.
이런 책들에서 배우고 감동하고 있는 걸 보면 내 인생의 가을은 여전히 익어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풍성한 결실이 있든 없든 또다시 내가 찾는 무언가를 향해 변함없이 나아가는 거지요. 하여 '내 인생의 가을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남들에게 크게 드러나고 보이는 결과가 아닐지라도 좋아하는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변함없이 몰두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숨어드는 겨울이 오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파릇파릇하겠지요.
내 인생의 가을은요.변함없는 관심이고 사랑이고 성장입니다. 그 무언가를 추구하는 열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