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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꽃 Aug 26. 2024

선선하게 주고받는 선물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은 기념일에나 하는 것으로 여겼다. 선물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보게 된 계기는 10여 년쯤 전에 왔다.



어떤 이가 단감 한 박스를 보낸 이야기를 했다. 그 집에 고3 수험생이 있었단다. 박스에 이런 문구를 넣어 보냈다고 했다. '고3이 '감 잡았다' 하고 나면 가족이 드시길~'



선물은 뭔가 거창해야 할 것 같았는데 마음을 담으면 뭐든지 선물이 될 수 있음을 그즈음 알았다. 그때부터였다. 모임이 있을 때면 뭘 전해줄까 궁리했다. 기회가 날 때마다 나름 준비해 갔는데 그런 행동을 따라 하는 이는 없었다. 주고받고 자연스럽게 이어질 줄 알았는데 대체로 받고는 웃고 지나갔다. 선물이 너무 가벼워서 그랬을까. 그래도 나에게는 추억이 남았다. 돌아보면 미소가 번지는 일이 많다.




코로나 시국이 거의 끝날 무렵 모처럼 10여 명의 모임이 있었다. 준비하려던 선물을 미처 사지 못하여 집에 있는 물건들을 배낭에 담아 갔다.


식사가 끝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즈음 엄청 고민했다. 이 선물들을 내놔도 될까. 그래서 물었다. 다들 뭔지는 모르지만 해보자 했다. 준비한 쪽지 12개를 쟁반에 담아 제비 뽑기부터 시작했다. 1번에서 6번까지 2세트를 만들었는데 쪽지를 집는 단계에서 사람들은 빵 터졌다. 어쩜 그리 모두 소녀 같던지. 같은 번호를 집은 사람들은 자리까지 옮겨 나란히 앉는 게 아닌가.


준비한 물건에도 번호를 달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여 배낭에서 즉석으로 꺼내어 주게 되었다.


걱정은 이런 선물을 저들이 좋아할까였다. 괜찮다고, 배낭 안에 든 게 뭔지도 모르고 모두 다음 단계를 채근했다. 커다란 배낭을 보물단지처럼 보듬어 안고서 하나씩 꺼내 전했다.


술을 좋아하는 두 여성에게는 제주에서 사 온 미니 소주를 하나씩 줬다. 피부 관리에 관심이 있던 두 사람에게는 1회용 팩을 주었고, 연이어 핸드크림이 나오고 우리 아이를 위해 사놓았던 맛난 스낵도 두 봉지 나왔다. 1회용 마스크도 나오고 그러다가 드디어 이쁜 싱글 두 사람의 몫이 남았다. 일부러 가장 이쁜 걸 남겼다. 지인이 멋지게 손뜨개 해준 연꽃 문양의 수세미를 꺼냈을 때 모두가 박수를 쳤다. 얼마나 좋아하고 웃던지. 그날 미션은 대 성공이었다.




'선물'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남에게 인사나 정을 나타내는 뜻으로 물건을 줌' 그리고 '인사로 또는 정을 나타내는 뜻으로 주다'라고 나온다. 사람들이 선물이라는 말에 부담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사전에 나와 있듯 선물은 인사나 정을 나누는 행동인데 말이다. 선물은 선선하게 주라고 했다. 변치 않고 주고받는 게 선물이라고 했다.


어떤 날에는 모임 가는 길에 흑장미 예닐곱 송이를 사 간 적이 있다. 장미를 한 송이씩 받고서 얼마나 기뻐하던지 보는 마음이 행복했다.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전해주는 사람의 정이 담긴다면 뭐가 되든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뭔가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다. 선물은 자기에게 보내오는 누군가의 관심이고 마음이고 호의여서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마음의 십 분의 일도 건네주지 못하는 듯하다. 선물은 비싸야 할 것 같고 받는 이가 또 어떻게 여길까 생각한다.


주고받음은 일종의 놀이라고 했다. 어떤 것을 전해줄까 서고민는 지적인 놀이, 이른바 '지적놀음'이다. 그 지적놀음을 알아채고 즐겼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런 놀음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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