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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행글

엄마에게 배운 우리 집 김장

by 사과꽃

오늘도 TV 홈쇼핑에서는 맛깔스러운 김치를 소개한다. 큼직한 포기김치가 먹음직스럽다. 무, 파, 갓 등이 켜켜이 올라간 배추김치를 보니 저절로 입맛이 돌았다. 커다란 김치통을 양손에 들고 엄마 집에 김장김치를 가지러 가던 기억이 난다.


겨울 초입이면 김장을 한다. 아주 소량 4 식구의 김장이다. 직접 만든 지가 15여 년이 넘었다. 직접 김장을 한다 하니 한 젊은 친구가 "몇 포기나 하세요!" 물은 적이 있다. 10여 포기라 하니 다들 웃음이 터졌다. 나름 김장인데 저들이 보기엔 아닌가 보다. 농산물시장에서 가장 큰 배추를 골라 네 등분하면 열 포기만 해도 그 양은 상당하다. 형제자매들이 모여 부모님 댁에서 수백 포기 담그는 양에 비하면 새초롬하긴 하다.


한 때는 친정 엄마가 담근 김치를 줄곧 얻어먹었다. 엄마가 더 이상 김장을 하지 못하게 되셨을 때 커다란 대야 서너 개를 물려주셨다. "이게 필요한 사람은 너일 것 같다" 그때 '내 손으로 김치를 담가봐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김장하는 걸 왜 한 번도 안 보여주셨어요?" 엄마에게 물으니,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늘 바쁜데 너희들 올 때까지 기다리랴? 그냥 치대서 넣었지. 김장은 제 때 해야 하거든" 하셨다. 하여 늘 우리는 완성되어 있는 김장을 해 질 녘 집에 와서 맛있게 먹었다. 분가를 해서도 늘 다 된 것을 얻어 갔으니 그런 불효가 어디 있을까?


영양사인 지인이 하던 말이 있다. 가을 햇살에 기른 무와 배추가 가장 달다고, 봄 여름에는 벌레가 많아 농약을 많이 뿌리게 되고 무엇보다 여름 배추는 써서 설탕을 넣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마가 건강한 가을배추 무로 김장을 담그면 가족이 일 년 내내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말도 자주 했다.


처음부터 김장을 하진 못했다. 배추 한 포기로 막김치를 담아봤다. 절이고 씻는데 손이 많이 갔다. 잘게 썰어서 절이니 건지기가 힘들어 꽁지를 잘라 배추 잎사귀채로 절여봤다. 씻고 건지기가 훨씬 쉬웠다. 한 포기를 여러 번 담그고 보니 세 포기의 양념을 가늠할 수 있었다. 세 포기가 아홉 포기, 열 두 포기가 됐다. 첫 10여 포기를 담근 해에 주위 반응은 대단했다. 김장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됐고 매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 세월이 15여 년 되었으니 성공한 셈이다.


엄마는 참조기를 갈아 넣으셨지만 우리 집은 생새우를 갈아 넣는다. 마늘과 생강 새우젓 멸치젓을 준비하고 거기에 더하여 생새우를 넣어 시원한 맛을 냈다. 해를 넘겨 보관하는 김장은 밀가루 풀을 넣지 않는다고 하셨다. 오래 보관하기에 잘못하면 군내가 나기 때문이다. 양념에 무채와 갓, 대파, 잔파 같은 채소가 들어가고, 사과 배는 물론 홍시도 넣는다. 육수를 내어 액젓과 갖은양념을 버무리는데, 그 육수가 집만의 비법인 듯하다.


어느 해에는 상황버섯까지 넣어 육수를 내기도 했다. 양념을 버무릴 때 매실액은 물론이고 불린 청각을 곱게 다져 넣는다. 정말 손이 많이 가기에 김장은 가족의 행사가 될 수밖에 없다. 배추와 양념을 준비하여 씻고 다지고 배합하는 건 내 몫이지만 켜켜이 양념을 넣어 둥글게 말아 통에 담는 건 신랑이 반 이상 도와준다. 김장하는 날은 수육을 삶아 파티를 한다.


막 담근 생생한 김치가 오늘도 홈쇼핑과 동네 반찬가게에 넘쳐나지만, 가족이 어울려 만든 김장만 할까? 김치는 그 집의 성씨 같이 고유한 맛이 담겨있다. 한 때 중국이 김치를 자기들 것이라 하여 전 국민이 웃었고, 바다 건너 민족이 '기무치'를 전 세계에 더 많이 팔고 있다지만 집집마다 만드는 우리 김치를 따라오지는 못할 테다. 엄마에게 배운 김치를 잘 이어가고 싶다. 매년 재료 준비를 하면서부터 엄마생각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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