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의 소설 '형제'를 읽고
'사람의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은 죽음으로 향하면서도 저녁노을이 비추는 생활을 그리워하고, 다른 두 사람은 향락을 추구하지만 저녁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한다...'
중국의 소설가, 수필가, 현대 중국 문학계의 대표적인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위화의 소설 '형제'를 읽었다. 출간 이후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데 초반에 덮을 뻔했다. 9살짜리 꼬맹이가 여자변소를 숨어서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슬쩍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 분량이 첫 권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길다. 우습기도 하고 그만 볼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3권짜리 소설인데 그래도 좀 더 보다가 덮자며 따라갔는데, 얼마 안 가 '덮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로 마음이 바뀌었다. 그 변소이야기로 시작하여 이후부터는 정말 책을 놓을 수가 없어진다.
서양 사람이 400년간 경험할 일을 40년 만에 겪는 중국 현대 혼란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문화 대혁명과 자본주의 개방까지 겪는 류진이라는 곳의 사람 이야기다. 송범평과 이란의 재혼으로 형제가 되는 이광두, 송강이 나온다. 한 줄 옮겨 적을 새도 없이 3권까지 따라가게 된다. 먹을 게 없어서 물로 배를 채우는 절대 빈곤이 남의 나라 일 같지가 않았고, 선한 성품의 송범평이 받는 수모가 안타까워서 그 코흘리개 자녀들이 어찌 성장하는지 궁금해진다. 의형제가 꼬맹이 때부터 어찌 그리 정다운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내내 뭉클하다.
술술 풀려가는 이야기는 옆에서 들려주는 것 같다. 마지막 권에서 처음으로 두 줄 메모를 했다. '임홍(송강의 부인)의 선택이 송강을 죽게 했다'와 '이광두의 욕심이 형 송강을 죽게 했다'이다. 하지만 20여 년 전 임홍은 인생을 알고서 송강을 선택했겠는가. 이광두 역시 그런 결과를 상상했겠나.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전개지만 그들의 한 생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현명해야 한다는 것, 어느 순간이고 어떤 상황에서고 제대로 된 판단과 말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송강이 병든 몸으로 돈을 벌러 떠나기 전에 동생 이광두가 금전적 지원을 해준 것을 임홍은 말했으면 좋았다. 사람만 좋아서는, 그 인성만 좋아서는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 쉽지 않다는 것도 보여준다. 물론 송강이라는 인물은 그런 성정임에도 진실되게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고 그의 말대로 행복하게 살다 간다지만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자신의 뜻대로 살다 갈 자기 삶이지만 최소한 남에게도 너무 큰 안타까움이나 슬픔을 주진 말아야 한다.
위화 작가가 보여준 류진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보낸 한 주였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든 어디든 잔혹하기도 하고 이기주의가 넘쳐난다. 그 속에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행동했으면 좋았을까는 이렇게 3자의 시각으로 보면서 해볼 수 있는 생각이다.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꼭 하나만 배워와도 따뜻해질 것은 그들의 형제애다. 저녁을 남겨서 다음날 싸 오는 도시락을 동생에게 가져가 나누어 먹는 송강의 모습. 성공한 이광두보다 고운 성정으로 최선을 다하며 산 송강에게 눈이 더 가는 건 왜일까? 다른 사람의 한 생을 보고 배울 수 있어서, 그런 소설을 보여줘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