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행글

여름 꽃

by 사과꽃


가지 않던 길을 걸었다

다리를 감는 묵직한 공기

팔과 얼굴에 다가오는

푹푹 끓는 순두부 같은 공기를 헤치고


채소 가게도 정육점도 동네 마트도 지나서 들어선 곳

솟아나는 땀을 식히며 돌아보니

빽빽하던 초록 잎이 겨울보다 못하다

커진 눈으로 두리번두리번


드문드문해진 화분을 지나고

냉장고 안에서 손을 흔들지 않았다면 몰랐을 꽃

귀한 화려함은 서늘한 냉장칸에 있었다

그마저 방금 도착한 녀석들이라고 둘둘말은 장미를 손질하던 사장이 돌아본다


붉은 장미는 지났고

하얗고 연 노랗고 분홍 빛을 내는 자잘한 장미류가 많다

어쩌면 나를 위하여 겉으로는 아이를 위하여

한 보따리 여름 꽃을 신문지에 말았다


넘치지도 감탄스럽지도 않지만

오목조목한 귀여움이 나를 보고 웃는다

내게 오려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지친 꽃을 보듬고 끓어 넘치는 길을 왔다


꽃을 향하는 마음은

그 길이 어떠하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또다시 길을 나서게 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몰라서 하는 실수라면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