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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는 것이 짐인지 마음인지

by 사과꽃


이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출근은 다른 집에서 한다. 근무처 앞 동네로 이사한다. 20여 년을 3~40분 거리에서 출퇴근했는데 퇴직을 5년 여 남긴 시점에 집을 옮긴다. 꼭 직장 때문은 아니다. 한 번쯤 옮길 때도 되었고 새로운 동네에 적응해보고 싶은 바람도 컸다. 새 기운을 펼치며 살아볼 테다.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줘야지. 방금 본 글에서도 혼자 있기 어려우면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자기가 친구가 되어줄 거라고 했는데 꼭 내 마음 같다. 살던 곳에서의 익숙함은 벗어나기 쉽지 않다. 짐을 싸는 일보다 마음 다지는 데 더 큰 에너지가 든다. 나를 위한 이사, 나를 돌보는 이사라고 여긴다. 어제와 오늘 오후에 반가를 다. 짐 쌀 일이 많지 않았지만 그러고 싶었다.



온통 고마운 것뿐이다. 화분이 잘 자라줘서 고맙고,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었던 부엌이며 욕실이며 거실까지. 특히 다른 집보다 넓어서 가을이면 김장 배추 절이기 좋았던 뒷베란다까지. 그 고마운 것들과 아쉬운 작별을 준비한다. 아쉽다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을 수 없고 중학교를 졸업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고등학교도 떠나고 대학을 떠나고 직장도 부서를 옮겨가며 발전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을 장성시키고 자잘한 즐거움을 함께 한 집,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나를 자세히 관찰하고 지켜보고 응원했을 집과 동네를 이제 벗어날 것이다.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 고생한 건 멋모르고 하루하루를 살아낸 나 자신이다. 참으로 우후죽순 솟아나고 매번 등장하는 걱정과 고민과 망상도 많았다. 내 부모님이 생전에 오셨던 집이다. 문득 그 시절의 엄마 아버지에게도 작별을 말하고 있는 나를 본다.



토요일 새집에 가서 청소를 하고 일요일 포장이사를 할 예정이라 큰 준비는 필요 없다. 물건을 더 찾아서 짐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생각해 보니 짐을 싸기 위해 조퇴를 한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 집에, 낮에 있고 싶었나 보다. 빈둥빈둥 누워서 TV를 보고 이방 저 방 오가면서 마지막 시간들을 누리고 있다. 마음을 싸서 포장하고 있다.



이제 우리 또 다른 보금자리로 가요. 덕분에 잘 살았어요. 더 잘 살아볼 겁니다. 모두에게 모든 사물에게 둘러싼 만물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며 조만간 새 집에서 새로운 인사를 나눌 것이다. 알러브 유, 땡스 소 머치. 굿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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