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팩을 둘러싸서 가지고 온 막걸리
화살 5발을 매대에 차고 사대에 섰다. 8명이 편사를 한다. 얼결에 한 편에 소속되어 섰지만 아직 몰기도 못한 신사(신입)로는 몸 둘 바를 모를 일이다. 지난봄에 벚꽃이 만개한 수양정에 따라가 편사를 해보았지만 아직 몰기를 못하여 접장으로 불리지도 못한다. 올해 신사가 들어왔으니 작년 수료생이기에 신사라고 할 수도 없지만 지금 편사 대열에선 여전히 신사가 맞다.
'피융--' 차례대로 한 발씩 날리는데 과녁에 불이 번쩍번쩍 들어온다. 큰일이다. 우리 편에 피해를 주면 안 되는데 어쩐단 말인가. 그녀는 첫 발부터 시작하여 3중, 4중을 넘어 드디어 5발째에도 과녁에 불이 들어왔다. 5발 중에 5발을 다 맞혀서 5중, 그러니까 몰기를 했다. 8명 중에 4, 5단을 보유한 사람도 몰기를 못하는데 공식적으로 1단인 그녀가 오늘 또 몰기를 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주말에 만날 때마다 간간이 그녀는 몰기를 하고 있다. 지난달엔가 2단 시험에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더니 시험 이후에 엄청 기량이 늘었음이 보인다. 그녀의 추천으로 활에 입문했다. 23년 가을에 우연히 알게 되었고 여러 차례 만나며 우연히 자기의 취미를 소개한 바 있다. 어느 날엔가 활을 배워보려느냐 하더니 수료생 모집에 대신 신청을 해줬다. 그렇게 등록되어 활을 배웠다.
20회의 수강 이후 수료하고 같은 활터에 입정 했지만 그녀를 만나는 건 한 달에 1~2회 정도다. 활 동호회 회원만 1백여 명이 넘고 주말 4시 이후에 모이는 사람들 그룹에 고맙게도 끼게 됐다. 그분들을 따라 지난봄에는 '벚꽃 편사'를 가는 호사도 누린 것이다. 아직 몰기를 못한 신사는 타 정(활터)에는 갈 수 없는데 단체에 끼워줘서 가능했다.
오늘 그녀가 김치전 준비를 해온다고 했다. 비가 예보된 주말이라 이틀 내내 핑계 대고 쉬려던 참이었는데 가야 했다. 사과도 썰어 담고 토마토도 썰어서 제법 큰 통에 담았다. 그녀가 싸 온 김치전과 구색이 맞을 듯해서다. 그런 그녀가 김치전 반죽을 싸 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커다란 프라이팬에 올리브유까지 싸왔다. 편사에서 우리 팀이 이기고 2층으로 올라갔을 때였다. (아! 나도 선방했다. 3-2-4중을 했으니.)
가스통이 없다. 가스레인지에 부대장비는 다 있는데 어느 틈엔가부터 가스통을 철거했나 보다. 차에서 버너를 꺼내오고 가까운 마트에 휴대용 가스를 사러 가고, 누구는 집에 불판을 가지러 간 사이에 어느 틈에 전을 부치게 됐다. 그녀는 유명하다는 인근의 00 막걸리까지 준비해 왔다. 운전자를 위하여 콜라에 사이다까지. 에어컨을 켜고 문을 열어놓고 전을 부쳤지만 수고로운 일은 틀림없다.
그래도 웃고 즐기며 전을 부치면서 최근에 그녀가 부쩍 몰기를 한 이유가 이해됐다. 다 내준다. 지난해부터 무료로 대학생들의 활 동아리를 만들어 지도했고 거기에 명궁들이 재능기부를 하게 한 일부터 지인들에게 활을 권하는 일까지. 나누고 베푼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데도 같이 하려는 그 마음이 복 받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나에게 주겠노라며 그 귀한 막걸리를 한 병 싸왔다. 얼음을 두 조각 붙이고 비닐로 꽁꽁 싸매서 봉했다. 저저번주에는 방울토마토 절임을 만들어 얼음에 싸왔더니, 그전에는 자기 엄마가 만들어 왔다고 '보리열무김치'를 한 통 싸왔다. 나에겐 자기가 내 딸처럼 여겨지는데 자기는 내 친정엄마가 없다고 자기 엄마가 해준 김치들을 갖다 준다.
수년간 알고 지내도 냉정한 이가 많은데 이런 분은 두어해 만났으면서도 정이 넘친다. 지난해 연말에는 '올 한 해 중에' 나를 만난 일이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하여 뭉클했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게 흐르는 물 같음을 느낀다. 흘러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렇게 새롭게 오는 이도 있다. 그래서 삶은 멈추지 않고 걸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고맙다는 말로는 감히 끝나지 않는 일들이 지금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