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요즘 생각

비라도 왔으면 싶은 밤

by 사과꽃


0 튜브에서 즐겨보는 영상은 계속 올라온다. 그렇게 꼬리를 잡혀놓고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구경을 자주 하고 있다. 절벽 위에 있는 따뜻한 방안은 아늑한데 창밖은 휘몰아치는 비가 퍼붓는 풍경이다. 처음엔 넋을 놓고 구경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뭔가 쓰고 싶어서 자리에 앉는다. 이럴 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다.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 적었듯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가장 힘든 순간은 지금이 아닐까. 순탄하게 하루를 잘 보낸 듯해도 뭔지 석연찮고 부족하고 텅 빈듯한 마음은 어찌 그리도 따라오는 건지.


아침에 입고 나간 옷은 입을 때부터 갈팡질팡이다. 추우려나 더우려나 두껍나?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에는 풀린다. 아 실내만 더운 거였네. 그래놓고 마음은 지하 주차장에서 또 바뀌며 오락가락한다. 급기야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순간에는 후드득 겨울비를 맞았다. 창밖 도로가 온통 젖어있는 걸 발견하고 누군가 소리쳤다.


빈 곳 없이 젖은 창밖을 내다보며 우와를 연발한 건 그래놓고 또 햇살이 번지고 있어서다. 점심시간에 들른 활터에서는 동글동글 튀어 오르는 우박을 보았다. 정말 눈을 대고 구경할 만한 얼음 덩어리가 아직 푸른기 남은 잔디 위로 송골송골 숨고 있었다. 기상이변이 실감 났고 날씨는 온종일 변덕스러웠다. 마음조차 그랬음을 늦은 시간에 안다. 잠을 깨어 불편해지는 이 마음 같다.




매 순간이 선택의 귀로다. 후회 없을 결정을 해야 하고 결과가 나오면 그쪽으로 매진해야 상념이 줄어든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필요이상 솔직하게 대하고 후회한다. 속마음을 드러낸 만큼 비수로 돌아오는데잊어버린다. 지나치게 친절하고 솔직해지니 이건 가벼움이다. 속마음을 단속하고 내비치지 말자는 다짐을 그리 하건만 오늘 또 한 번 스스로 정한 의리에 속았다.


어쩌면 자기들이 필요해서 다가왔을 텐데 의리를 앞세워서 해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털어준다. 그 순간에 다짐은 했다. 그저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라고. 그래서인지 지난날만큼의 번뇌는 아니니 조금 성장한 것도 같다. 지금의 힘듬은 방향이 조금 다른 불편함이다.


입 밖으로 내놓는 솔직함은 아낄수록 좋다. 생각에서 멈추는 일과 말로 표현하는 일은 큰 차이를 낸다. 말로 표현해 버리면 형체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책임이 지워진다. 과묵 침묵이 때로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 좋음을 다시 깨닫는다. 밤비라도 후줄근하게 내려서 알 수 없는 번뇌를 좀 씻어갔으면. 0 튜브를 열어서라도 비구경을 해야겠다. ('25년 12월 초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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