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아침의 캠퍼스는 새들의 천국이다. 그중 까치 소리는 단연 크게 들린다. 반가운 소식을 알린다는 정서 덕인지 사방에서 푸드덕거리는 까치는 밉지가 않다.
아침에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저만치 바닥을 걷는 까치를 보고 속도를 줄였는데 도로로 나온 녀석이 차가 다가가도 날아오르지 않았다. 뒤뚱뒤뚱 걸어 마치 사람처럼 도로를 건너고 뛰며 제 뒤 꽁지를 다 보여주었다. 다가가는 거구가 무섭지 않은 듯했다. 커다란 쇠 덩어리가 자기 길을 방해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진 걸까.
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한다. 사람들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라고 하는데 때나 먼지가 묻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미흡할 때 그런 말을 한다. 그래놓고 무서워서가 아니란다. 피하고 싶다는 것은 좋지 않다. 조직이든 사회든 나라든.
살아 갈수록 무섭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 늘어난다. 피하고 싶으면 떠나고 싶어 진다. 그러면 불편하다. 사회의 내외적 제도가 최소한 합리적으로 작동한다는 믿음이 있을 때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것이다. 자기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가 살만한 세상이 되도록. 우린 무얼 하면 좋을까.
아장아장 걸어가던 까치는 무섭지 않았나 보다. 피하지 않았다. 이 공간이 저들의 살만한 터전이 되어주나 보다. 사람처럼 걷는 까치를 보며 웃음이 났는데 피하지 않는 그 당당함에 정작 무서움의 뜻을 되짚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