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일기 9
벤트 할러 원작의 동화 '곰이 되고 싶어요'에서는 사냥꾼 인간 아빠에 의해 곰엄마를 잃은 뒤, 곰소년으로 자란 ‘작은곰’은 인간의 문명에 던져져 자신은 곰도 인간도 그 무엇도 아니라는 생각 속에서 인간의 문화와 자신에게 씌워질 인간의 영혼에 두려움을 느끼고 곰으로 남길 원한다. 산의 정령에게 가 부탁하자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한 자만이 곰이 될 수 있다고 하며 제시한 첫 번째 관문은 두 산 사이의 거대한 해협을 헤엄쳐 건너기였다. 분노한 바다의 소용돌이에 저항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작은곰’을 푸른 고래가 번쩍 들어 올려 도와준다. 두 번째 문턱은 3일 밤낮을 거센 북풍과 싸우기였는데 “용감하게도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사람은 고래처럼 도와야 한댔어”라며 진노한 북풍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향소떼가 종잇장처럼 나약한 소년을 에워싸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 마지막 문턱은 고독을 견디기였는데 어두운 동굴 속에서 위협을 느끼며 늑대와 대치하는데 아빠곰과 엄마곰의 그림자가 ‘작은곰’을 감싸 안아 진짜 곰으로 변하는 순간 우렁찬 울음을 내지르며 발길질로 늑대를 물리쳐 내쫓는다.
이렇게 진짜 곰이 된 아들인 줄 모르고 그 등에 작살을 꽂고 놀란 사냥꾼 아빠는 곰소년 아들을 데려와 보살피며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곰사냥을 가르치려 한다. 그러나 곰 친구를 잃고 슬피 우는 아들을 보는 아내의 연민과 호소를 듣고 “살아 있는 것은 사슬이 아니라 사랑으로 붙드는 거지. 떠나거라, 얘야.”라고 깨닫는다. 곰소년은 인간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떠나며 수면에 비친 곰의 얼굴을 확인하고 연인인 곰지와 만나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곰으로 자란 인간 곰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진짜 곰이 되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수행하며 다른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끝내 자신의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고독을 이겨내는 순간에 봉인이 풀리고 원하는 다른 존재가 된다.
자신이 어떤 관계 속에서 행복한지를 알고 정체성을 찾아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해방되는 인생의 통과의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동화다. 처음에 부모는 자신의 기준과 판단에 맞춰 자식의 운명을 고집하지만, 자식의 감정과 열망을 따르는 큰 사랑으로 울면서도 자식을 떠나 보낸다. 부모와 분리 독립이 안 되는 병적인 의존 관계에 적용하면 좋을 통과의례 동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하쿠’라는 구루를 만나 일상 속의 ‘치히로’가 신화적인 ‘센’으로 성장하여 혼자 미션을 수행할 만큼 변화하더니 급기야는 돌아올 기차표가 없는 먼 길을 ‘하쿠’를 구하러 떠난다. ‘하쿠’를 구하고 돌아오는 그 용의 등에서 그를 구하러 간 것이 결국 자신이었음을 운명적으로 깨닫는다.
어쩌면 소년곰처럼 원하는 것이 선명할 때는 공식이 간단하다. 문제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지, 어떤 관계에 놓이기를 원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드러나지 않고, 규정하기 어렵고, 실체나 뼈대가 만져지지 않는 미스터리이며 변화되고 형성되는 과정이니 평생토록 형체를 잡을 수가 없다.
진로교사로 전환하여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흥미, 적성, 가치관, 성격의 네 가지 검사로 윤곽을 잡아 나를 파악하는 기초로 삼는 것인데 그 결과값으로 지은 옷은 실제의 나와 치수가 잘 안 맞을뿐더러 변화무쌍한 중학생의 속도를 담아낼 수가 없다. 자아 발견, 자기 이해 단원에서 어떤 남자아이는 “아아,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제 진로를 그냥 정해줘요”하고 책상에 엎드리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그래, 모르겠단 니 말이 맞다. 나도 이 나이까지 나를 모르겠다. 고정적인 본성으로서의 나는 없단다. 나 찾아 봐라 하는 숨바꼭질로 해결 안되지’라는 소리가 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와 수업을 방해하곤 했다.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공연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그들에게 강요하고 겁박할 세부적인 맞춤형 계획을 개발하면서 답 없는 답을 요구하던 나는 은퇴로 인해 몇 배나 자유롭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어쩌면 하지 않느니만 못했을 수도 있는 일들을 책임감으로 위장하여 스스로를 달래면서도 떨칠 수 없던 의심에서 비껴나니 한결 가볍다. 낯선 은퇴의 길에 생짜배기로 나서서 비로소 내 시간을 오롯이 품으니 남은 해가 얼마일지 몰라 더 소중하다. 길 없는 길로 접어든다손 그것이 뭐 대수랴 싶다.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과 희열의 순간을 잘 포착하면서 장애가 될 만한 것이나 사람을 들이지 않고 에너지에 맞게 내 시간과 공간을 비축할 것, 언젠가는 원하는 온도의 공동체와의 연결을 꿈꿀 것, 설혹 모든 것이 전복되어 으깨지고 부서지는 순간이 덮쳐와도 곰이 되는 세 가지 관문의 마지막인 고독의 문턱까지 넘어서기를 말없이 반복할 것, 이것이 곰이 되고 싶어하듯이 '내'가 되고 싶어하는 오늘의 은퇴 지침이다.
「가끔은 나도 거의-정말 ‘거의’-‘젠장, 차라리 누가 나보고 뭘 해야 한다고 말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유는 의사결정을 수반하는 것이고 각각의 결정은 운명적인 결정이다. 여러분의 내부에 있는 시스템이 열망하는 것과 딱 맞아 떨어지는 어떤 것을 외부 세계에서 발견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중략- 룰렛 공은 결코 ‘아, 여기 내려앉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기 내려앉아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할 거야’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곳에 머물라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치워버려야 희열이 온다.」
-조셉 캠벨, 「신화와 인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