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일기 2 -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 읽기2
열심히 해라, 똑 떨어진다
고3 담임이 나에게 날리던 시그니처 멘트 “열심히 해라, 똑 떨어진다” 그 말끝에 와르르 웃어대던 아이들은 어쩌면 철석같다고 믿었던 세상과의 계약에 번쩍 금이 가는 모습을 순간 목격하지 않았을까, 기대하던 보상의 끝에 조만간 닥치게 될 환멸에 대한 예측에서 자신도 예외가 아닐지 모른다는 불안의 시그널로 스며들었을까, 이것은 물론 과한 추측이다. 심술궂은 저주라기보다는 만만한 나를 개그소재 삼아 툭툭 치고 다닌 본인의 인기관리용 샌드백 멘트였다.
나를 못마땅해하는 담임을 향해 고지식한 시골 유학생이었던 내가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고 말 것이라는 오만한 눈빛으로 존재 증명을 할 때마다 더 리드미컬한 수식어가 붙을 뿐이었다. “넌 수업료 내지 말고 그걸로 오도독이나 사 먹어라. 열심히 해라, 똑 떨어진다.”
그때의 담임보다 나이를 한참 더 먹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부모로부터 벗어나 세상의 요구에 맞춰 사회적 정체성을 확보해가는 인생 초반기 서툰 아이에게는 과하게 공개적이고 가학적이었다. 나를 제물로 한 그 유머를 날리고 아이들을 보며 씩 웃던 입매의 선명한 주름과 쓸쓸한 웃음의 파장이 눈에 선하다. 카키색 양복에 백구두를 신은 유니크함으로 나름 인기몰이를 하던 담임은 진학상담으로 인한 상처로 끝내 표정을 풀지 않던 시골뜨기 계집애에 대한 약간의 켕김과 신경 거슬리는 불편함을 소심하고 시니컬한 복수로 날렸을 것이다. 나는 기죽지 않았고 그래서 더 자주 아이들의 기대와 인기에 영합하는 담임의 유머 펀치에 얻어맞았다. 세상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가해하고 위험하고 막강하다는 두려움을 피학적 포즈로 과장해 나를 파괴할 핑곗거리로 삼던 시절이었다.
본인이 기재내용을 잘 모르겠다고 월요일에 와서 하라던 출석부 기재를 월요일 아침에 난데없이 안했다고 아이들 앞에 불러세워 발작적으로 출석부로 머리통을 내리치던 기억, 왁스 검사를 딱 나까지만 하고는 나를 혼낼 구실을 잡아 조례시간을 꽉 채우던 기억, 진학상담시 그 큰 교무실에서 내 질문을 큰 목소리로 조롱거리로 만들어 다른 선생님이 나를 따라나와 위로하게 만든 이후로 한 번도 웃지 않은 나를 향해 그는 생기부에 성실성과 책임감이 부족한 학생으로 낙인찍음으로써 복수를 마쳤다. "다 비교적 말을 잘 듣는 애들이다, 000만 빼놓고!" 하면 일시에 교실 안에 터지던 웃음, 이런 멘트는 쫌 귀엽고 허약하다. 잘 웃어주는 아이들 사이에 가시처럼 박힌 내가 거슬렸을 것이고 s대를 나온 그의 나르시시즘에 합당치 않았을 것이고 아무 배경 없는 시골 유학생인 내가 만만도 했을 것이다. 아 왜 이해가 되나. 아이들 사이에 소문은 과장되게 퍼져 나갔으나 아마도 대부분은 화살이 자신을 향하지 않고 총알받이인 나에게서 멈춘 것에 모종의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33년 반동안 그를 반면교사 삼아 생활한 걸 보면 고3 시절은 인생의 스펙트럼을 부썩 넓혀 나락까지 가 나의 본질과 바닥을 만나게 해 준 탄력의 한 해였다. 돌아가라면 끔찍하나 미운오리새끼로서의 근성이나 맷집을 키운 매운 맛 한 켜, 뭔가 자꾸만 되돌아가서 감기는 쇠말뚝같이 뽑히지 않는 기억이다.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에서 욥에 대한 얘기가 유독 마음을 세차게 치고 들어왔다. 인과론의 입구에서 안전과 만족을 위한 순응적 태도를 지불하면, 출구에서 관리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보상이 대가를 치러줄 것이라는 욥의 공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라나 다시 그 질서를 복제, 전수하는 파수꾼으로 지낸 삼십여 년, 문득 신물이 난 나는 나를 해제했다. 경계경보를 해제하듯 나의 직위를 내 손으로 해제하고 시스템 밖으로 나선 것이다.
인생 후반기의 의제로 가득한 내가 인생 전반기를 사는 아이들을 마주하기 버거웠을까, 사람이 되기 위한 성장기에 필요한 의무들을 알려주고 촉진한다며 알량한 답을 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궁한 답을 찾아다 대면서도 속으로는 ‘열심히 해라, 똑 떨어진다’의 현실을 전수하게 될까 두려워진 것일까, 뒤도 안 돌아보고 학교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동안 학교에서 쓰던 문법을 폐기 삭제해 버렸다.
지친 영혼을 위한 ‘나기의 휴식’이라는 일본드라마에서는 늘 주변의 공기를 파악하는 눈치병에 걸린 나기에게 “공기는 파악하는 게 아니라 마시고 내뱉는 거야”라는 말이 반복된다. 증명하려 하고 파악하려 하고 영향 끼치려 하고 설득하려던 관객과 배심원을 몰아내고 내 속으로 도망쳤으니 잘했다. 내 호흡으로 그냥 숨만 쉬며 살아보자, 어디.
「우리 모두는 세상이나 신과 협상을 벌일 수 있다고 믿으면서 욥과 비슷한 주술적 사고를 한다. 젊었을 때는 뜻을 올바르게 세우고 행동을 바르게 하며 배움을 많이 갖추기만 하면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이 들어감에 따라 자기감, 결과에 대한 통제력, 능력에 대한 가정이 거듭 모욕당하는 것을 확인한다.
그렇게 우주로부터 배신감을 느끼고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한 계획이나 현실의 지도, 삶의 방식에 대한 지침, 생산적인 결과에 대한 기대 등이 폐기된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방향감각 상실하게 된다.」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