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일기 3 -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 읽기 3
‘원하고 원망하죠’ 사랑은 투사
오래전 차 안에서 두 아들에게 요즘 트랜드에 관한 얘기 끝에 대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 얘기를 무심코 하다가 갑자기 동시에 반발이 솟구치는 바람에 정신이 퍼뜩 난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내면화된 경쟁적인 기준을 내놓은 것이 비위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그동안 없다고 믿었던 그런 것들이 내 안에서 발톱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되살아날 때마다 아들들의 반발로 일깨워져 박살이 나곤 하였다.
사랑의 이름으로 내 뜻대로 은연중에 상대를 조종하는 자신의 그림자가 자녀는 물론 손주에게까지 내리내리 씌워질 수 있음을 알고 그때마다 고백하고 멈춰야 한다.
사랑은 투사로 시작된다. 스무 살 나이에 나는 얼음골짜기에 빠진 기분으로 봄이 다 지나도록 국방색 잠바를 걸치고 땅만 보고 다녔다. 왜 이런 삶을 계속해야 할지 모르고 숨을 참고 있을 때 시야에 어른거리던 남자가 시론 시간에 무슨 발표를 했고 그 내용은 한 줄도 생각나지 않지만 어쩌면 삶의 의미를 대신해 줄지도 모른다는 짐작으로 유리 덮개를 씌워 대뜸 그를 포획했다.
비슷한 농도의 어둠, 유사한 그을음의 정도와 입맛을 잃은 세상을 향해 떨군 각도의 겹침 현상이었을까. 혼자 죽기는 싫은, 그도 아니면 셀프 아웃을 알리고 싶은 통렬한 자기 고발이었을까, 어차피 돌아올 일 없는데 자퇴를 휴학으로 바꾼 교수님 때문에 나는 도시에서 자신을 몰아낼 알리바이 편지를 그 남자에게 부도수표처럼 던져놓고 여름이 오기 전 서둘러 탈출했다.
연결을 원했는지 멋있는 엔딩용이었는지 알 수 없다. 즉, 시험공부 대신 쓴 편지는 그를 향한 것인지 나를 향해 남긴 항변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 편지를 어쩌자고 건넨 나의 죄와 답장을 한 그의 죗값이 얽혀 인생이 길게 꼬라 박혔다. 영문모르고 포획된 그 남자는 평생 사랑으로 자라지 못한 나의 투사로 억울해했고, 어떤 면을 투사했는지도 모르던 내가 치룬 대가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 나는 현실감 없는 선택을 한 후 현실의 무게에 압도당했고 그는 현실감 있게 선택에 응한 후 본래 자신의 비현실의 자리로 돌아간 듯 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거울삼아 나의 감정을 찬찬히 정확히 인식해가는 진짜 사랑법을 알았다면 달라졌을까, 나에 대한 그의 투사가 맞물려 ‘원하고 원망하는’ 상호 투사의 견고함으로 서로를 가둔 것은 아니었을까, 누구의 인생에 덜컥 끼어들어 나의 투사를 주문하고 불행으로 인도한 지난날 나의 혐의를 밝히노라니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졌으되 사랑이란 말 앞에 한 번도 당당해 본 적 없는 이유일 것이다.
지나놓고 보니 사람들 상대로 소설깨나 써 재꼈다. 자기 이미지에 대한 변덕스러운 환타지나 기대를 타인에게 걸어놓고 약속한 바 없는 상대에게 멋대로 배신감을 느끼지 않나, 타인이나 다른 무엇이 내가 원하는 경지로 데려다줄 것을 상정하고 지레짐작으로 다가서고 섣부르게 절망하지를 않나, 평생 길들여진 이런 투사의 관성을 이제 멈추기 어려워진 것은 아닐까 겁도 난다.
돌아가시기 직전 정신이 혼미하실 때도 엄마를 챙겨 몰래 고향으로 가려는 짐을 밤새 꾸리시던 아버지, 피란민 아버지가 피 같은 땅을 팔아 도래솔 아늑한 부모의 묘를 가꾸는데 남다른 정성을 쏟고, 족보를 집에서 가장 번지르르한 장에 넣어 모시던 것도 뿌리 뽑힌 삶의 잃어버린 조각을 복원하려는 열망이었음을 돌아가신 후에야 알았다. 부모의 살아보지 못한 삶이 내게 투사되는 게 싫어서 기껏 도망쳐 벗어나 다른 도시를 떠돌다 육십이 되어 돌아보니 부모와 비슷한 삶의 자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무섭게 깨닫는다.
나의 공간은 늘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새로운 소원이라도 성취해 줄 것처럼 새 아파트를 향해 매력적인 각본을 써 대지만 막상 희망의 성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일상은 범람하고 희망은 간데없을 것이다. 육십이 넘어서까지 그런 무의식적 작동을 깨닫지 못하고, 내 옷을 입히고 내 그림자 삶을 대신 짊어져 달라고 전가시킬 대상을 찾아 헤매는 자기기만을 떠올리면 좀 끔찍하다. 남이 지워준 짐도 벗고 내 짐을 남에게 지우지도 말아야 한다. 내 삶의 옹이를 찾아 현실 속에서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것을 찾아서 할 만큼만 하자. 꽁무니 빼고 망설이다가 삶은 터무니없이 졸지에 끝날 것이므로. 티벳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죽고 우리도 죽고 우리는 오늘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므로 오늘이 각별한 그 날이다.
「투사는 우리 안의 내면 아이가 우리가 낳은 아이, 단지 우리의 삶을 거쳐 지나갈 뿐인 ‘타인’과 혼동을 일으키면서 자식들에게 우리가 살지 못한 삶을 살게 하고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성취하게 하고 나르시시스트적인 우리의 목표를 계속 수행하도록 만든다.
*투사의 5단계*
1단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자신의 어떤 측면을 타자에게 거듭 투사하여,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일부 보고 있으며 자신의 영혼과 깊은 관계를 맺기 원하는 욕망이 있는 마법처럼 느껴지는 단계이다.
2단계: 타인이나 대상이 기대한 대로 되지 않거나 움직여 주지 않고, 우리가 선호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거나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 환멸의 단계이다.
3단계: 투사를 강화하고 원래 지닌 매력을 회복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시도하는 단계로, 직장에서 승진 추구 등에 노력을 배가하거나 파트너나 자식이 기대에 부응하도록 구워삶거나 통제하거나 안 되면 애정을 거둬들이는 단계이다.
타자가 투사의 내용물이나 계획과 절대로 같을 수 없기 때문에 투사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고, 갈등, 혼동, 소외를 낳거나 상처를 안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4단계: 타자의 현실과 공상이 품고 있는 계획의 불일치가 분명해지고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어 투사를 철회하고 고통받는 단계이다. 불륜, 이직, 성형수술이나 무모한 선택 뒤에 타자는 타자일 뿐 우리 정신의 내용물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일어난다.
5단계: 투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단계이나 투사를 일으킨 의제들이 내면에 너무 깊이 입력돼 있고 에너지를 많이 싣고 있어 다시 투사를 일으키기 쉽다. 투사의 의도와 타자의 현실 사이의 불일치로 인한 혼동, 불화, 실망, 분노, 노력의 배가, 실패의 경험을 거친 뒤 투사의 침식이 나타나고 이 단계를 거치는 동안 더욱 의식적인 존재가 되라는 초대를 받는다.」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에서 발췌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