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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Aug 20. 2022

이해한다는 오해

은퇴일기 4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필립 로스, <미국의 목가중에서-

     

 그저 잠잠히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자기 감정에 잠겨상대방의 말을 신중하게 듣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경로당에 가면 네 분의 할머니가 동시에 말을 하는 데 듣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그래선지 경로당에 다니시던 어머니도 자신의 말이 귀에 담기지 않고 바람에 날아갈세라 팔을 툭 쳐 청자를 찜한 후에 말하는 버릇이 생기셨다      

 

 주변과 자신의 몸에까지 까닭 없이 들이닥친 극한의 고난을 설명할 길 없어 그저 견딜 뿐인 욥은 착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인과론과 정반대로 들이닥친 상황에 대해 신에게 끝까지 항변한다찾아온 친구들은 인과론적인 신앙에 묶여서 욥의 죄를 다그치고 논쟁적으로 비난하고 분노한다친구들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말인데도 도움은커녕 상처만 주며오히려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삼는 데만 급급하다욥에 대한 의심과 시기 질투와 불신을 담은 친구들의 옳은 소리는 침묵에 못 미치는 자기 과시에 불과한 것이다.     

 

 결혼 초부터 싸울 때 내가 많이 들은 말은 옳은 말만 하는 게 네 잘못이라는 거였다대항할 말의 논리를 세우기 위해 한 방에 심장의 한복판에 명중시킬 뾰족한 옳은 말을 찾아 장전시켰다감춰진 속마음은 읽어내지 못하고 똑같은 싸움을 안하려면 명확한 논리를 세워야 한다 믿었으니 들어줄 귀는 서로에게 끝내 열리지 않았다나의 잘난 교양 머리를 벗겨버리겠다는 적의 가득한 그의 분노가 아래 윗집을 뚫을 기세를 보이면 아연실색 내 의식은 먼저 곤두박질쳐 투신하곤 했다그야말로 논쟁에 이기고 인생에 지는’ 꼬락서니를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했다그렇게 교만이 무르익어 가는 동안 나는 늘 겸손했고 대화에 굶주렸고 선의 가득했으며 누명처럼 억울했다.  

 그때마다 침묵을 못 견디는 옳은 말로 울화와 슬픔을 버무린 장문의 편지를 서너 장씩 써서 건넸다무겁게 말린 그 편지는 번번이 읽히지도 못한 채 그의 손에 닿는 순간 '휘익'하고 장롱 뒤 크레바스 속을 향해 절묘한 각도로 추락하였다읽었다면 달라졌을까오랜 시간이 지난 후 편지 무덤을 발견한 이삿짐센터 직원이 소각용 봉투 속에 무사히 봉인했으리라서로를 향해 죽자사자 쏟아낸 투사들 안에서 이미 간파당해 더 이상 자극받지 않았던 말들내 것인 줄도 모르고 쏘아대던 다트판에 구멍 숭숭 뚫린 마음들이 비어져 나와 먼지처럼 비듬처럼 떠다녔겠지그 오래된 집을 떠나 이사하는 날 차마 장롱 뒤를 확인해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온 이유다.

 

 사랑은 권력을 향한 의지라고 했다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사람은 저마다의 권력이 미치는 사람이 필요하지만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기도 하다자신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로테에게 완전히 절망하는 베르테르처럼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줄 사람은 없다욥의 친구들을 보아도 우리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그러니 진짜 친구나 진짜 사랑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완전한 이해를 바라며 진짜를 감정하는 일도 소모적인 일이다오해를 기본 설정값으로 놓으면 끊어진 친구들에 대해 일렁이던 마음도 먼지처럼 매캐하게 가라앉는다. 친구도 시간의 오래 묵은 정도가 아니라 생의 단계를 넘으며 생겨나는 인생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것이다새잎이 나고 묵은 껍질이 탈피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도 어쩔 수 없는 채로 그저 놓여나는 것이다     



완전한 이해를 포기하는 것타자가 타자로서 존재하고 타자로 존재하려고 하는 것을 긍정하는 것관심을 기울이면서도 거리를 줄이지 않는 것친밀권은 그러한 타자와의 느슨한 관계의 지속도 가능하게 한다.」                                                                                        사이토준이치 민주적 공공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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