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결혼

예언속에 준비된 결혼예물

by 김하록

철진과 펄은 호세 신부의 극진한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결혼 미사를 거행하기 전에 아직 서너 시간이 남아서 철진과 펄은 먼저 출출한 배를 채우러 갔다.


"펄! 결혼식 날에는 국수를 먹어야 하는데, 여기는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 해서 말인데 이 근처에 있는 Nakama Ramen Corner가 그나마 면발이 긴 국수처럼 생긴 라면을 팔더라구. 거기서 우리의 결혼식을 자축하면서 라면을 먹도록 하자. 어떻게 생각해?"

"전 좋아요. 이수도 좋다고 하네요. 얼른 가요."

철진과 펄은 나까마 라멘 코너로 가서 각각 새우라멘, 등심 스테이크 라멘, 버섯, 토마토, 브로콜리 등이 들어가 채소라멘, 해물 라멘, 하연 국물의 나가사키 라멘 등 다섯 종류 이상 먹어 치웠다. 면은 원래 빨리 배가 꺼지는 경향이 있으니 결혼식을 진행하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실컷 먹었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은 다음 철진과 펄은 Patio Olmos 쇼핑몰로 달려가서 몸에 딱 맞는 정장과 구두를 사서 즉석에서 갈아입었고, 미용실에서 머리도 깔끔하게 손질했다. 쇼핑몰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그랬지만 미용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눈부신 광채와 아우라로 인해서 쇼핑몰에서 스쳐가는 모든 이들이 넋을 잃고 쳐다보았으며, 일부는 철진과 펄을 뒤따르기까지 했다.

철진과 펄은 결혼 미사의 예행연습에 늦지 않게 서둘러서 Catedral de Córdoba 대성당으로 걸어갔다. 지나가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의 선망의 눈길을 받으면서 그들이 성당 입구로 다가가자 성당 관리인 마르코, 사라와 레이첼 수녀님, 그리고 호세 대주교님이 친히 입구에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펄은 두 명의 수녀님을 따라 가서 결혼 미사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철진은 호세 대주교님을 따라가서 결혼식에서 이루어질 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런 다음 다시 펄과 합류해서 예배당을 거닐면서 결혼식 때 신부를 맞이해서 입장하고 서약을 하고 신부님의 결혼 선포와 함께 퇴장하는 연습을 했다.

연습을 마친 후 호세 신부님은 철진을 따로 불러서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레이첼 수녀님은 펄을 자신의 집무실로 데라고 갔다. 그곳에서 어떤 단추를 누르자 지하의 밀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고 그 통로를 따라 내려간 비밀스러운 장소에서도 남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벽에 손을 가져다 대자 벽 한쪽이 열리며 세월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세상 물질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순수한 광채를 발하는 검은색 팔찌 한 쌍이 보였다. 한편 사라와 레이첼 수녀님을 따라간 펄 앞에는 중앙에 엄청 큰 붉은 색 광석이 박혀있는 점을 제외하고 철진과 동일한 물질로 이루어진 허리띠와 목걸이가 그 속에 담긴 엄청난 에너지를 상기시키듯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호세 신부님은 그 팔찌 한 쌍을 철진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세상의 수호자시여. 오랜 세월 그대를 기다렸습니다. 이 팔찌는 오랜 세월 저와 같은 비밀 임무를 띤 신부가 지켜왔던 것입니다."

"오 신부님! 감히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제가 세상의 수호자인지 파괴자인지 어찌 알고 이것을 제게 주시나이까? 그리고 저는 그런 삶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하나로 정해진 삶을 살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이 팔찌를 끼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대가 세상의 수호자로 낙점 받은 이라면 이 팔찌를 두르는 순간 팔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어서 이 팔찌들을 차보세요."

오랜 세월 진정한 주인을 기다리며 세월의 때가 묻은 황금 팔찌를 철진이 손목에 차는 순간 팔찌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태초의 빛을 발하면서 철진의 손목 안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펄에게도 철진과 같이 허리띠와 목걸이가 엄청난 광채를 발하면서 펄의 몸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오오! 주여! 드디어 세상의 수호자가 나타났나이다. 이들 부부가 예언 속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 나가도록 인도하소서."

철진과 펄에게 오랜 예언 속의 일이 동시에 발생하자 비밀 공간의 천장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구슬이 눈부신 빛을 발했고, 이를 본 호세 대주교가 감격에 찬 기도를 올린 것이었다. 철진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호세 신부님의 부연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비밀 통로를 따라 호세 신부님의 집무실로 나온 후 결혼식이 열리는 본당으로 향했다.

철진과 펄이 원래 지녔던 아우라가 수천 만 배 증폭되어 정제되어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과 함께 입당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호세 신부님은 성호경을 긋고 오늘 미사는 철진과 펄의 혼배 성사로 드림을 알렸다. 죄를 고백하는 참회의 시간과 자비송에 이어서 대영광송을 부른 다음 아름다운 소녀의 미카엘라에 의한 제1독서와 미소년 프란체스코에 의한 제 2독서 이후에 호세 신부님은 본격적으로 복음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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