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적

태초의 악마

by 김하록

철진은 포토시를 뱀파이어로부터 정화한 후 수크레로 날아갔다. 철진은 뱀파이어들도 문제지만 수많은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노새처럼 혹사시키며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고서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대를 거듭하여 그 부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스페인을 위시한 서구 열강들과 미국과 자본가들 세력을 응징하는 것이 자신의 숙명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아버지 권도식도 지배 계층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치밀한 덫에 걸려 무고한 피를 흘리지 않았던가! 그 억울함을 어찌 다 말할 것이며, 생각 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한 철진의 깊은 슬픔과 울분은 아직도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맺혀있었다. 단 한번도 아버지의 유언을 잊은 적이 없었다. 스스로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되고, 바람에 찢겨서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새 씨를 뿌리고 번성하는 바람 버섯이 되어 세상을 뒤덮고 그 힘으로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해발 2,810m 볼리비아의 중남부에 위치한 수크레는 교육과 정부의 중심지이며 볼리비아의 대법원이 위치해 있는 사법부의 수도였다.


"짐! 이 백색과 붉은 지붕으로 이루어진 도시는 시각적으로도 그렇고 피부에 와 닿는 느낌도 그렇고 시원해서 좋아요."

"응, 펄! 여기는 고도가 높아서 일년 내내 서늘한 온도를 가진 아열대성 기후라서 그래."

"그런데, 짐! 이 도시의 건물들은 어떻게 죄다 흰색인 거에요?"

"수크레는 스페인 식민지 양식의 영향을 받아서 이 지역의 흰색 까라라 석회암을 사용해서 지어서 그래. 흰색은 순수, 우아함, 깨끗함을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안데스의 강한 햇빛을 반사해서, 서늘한 효과를 주는 기능적인 점도 영향을 미쳤어. La Ciudad Blanca, 백색의 도시라는 이 도시의 역사적인 정체성과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규정으로 흰색의 사용을 장려하기도 했고."

"오늘은 어디부터 둘러볼 생각이에요?"

"응, 체 게바라가 가장 존경했고, 닮고 싶어했던 사람을 보러 갈 거야."

"그 사람이 누구죠?"

"Simón José Antonio de la Santísima Trinidad Bolívar y Palacios Ponte-Andrade y Blanco. 이름이 굉장히 길지? 줄여서 시몬 볼리바르라고 해."

"어떤 사람이길래 체 게바라가 그토록 존경하고 닮고 싶어했을까요?"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사람이야. 무장 투쟁을 통하여 식민지였던 파나마,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볼리비아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라틴 아메리카 독립사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상징적인 인물이지. 중남미 역사의 근현대사를 논함에 있어서 볼리바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야. 볼리비아는 볼리바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국가명을 그의 이름에서 따왔고, 그의 초상화는 화폐 속에 등장해. 게다가 체 게바라가 천식으로 고생한 것처럼 볼리바르도 지병인 폐결핵을 앓았는데, 이런 인간적인 약점을 공유한 점도 체 게바라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거야. 둘 다 미국으로부터 라틴 아메리카가 경제적으나 정치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교육을 중요시했던 점도 비슷해."

"그렇게 여러 국가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면서 언제 교육에 신경 쓸 틈이 있었어요?"

"없었지. 각 지역간 소통의 문제, 정치적 이해관계, 지역 군벌들의 욕심, 미국과 영국의 분열 정책 등이 발목을 붙잡아서, 라틴 아메리카는 거대한 유혈 충돌과 무질서가 난무할 것이라는 그의 예언대로 남미 정국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자 이렇게 절규했어. [우리는 혁명을 위해서 몸 바치는 동안 배울 시간이 없었다.] 체 게바라는 이런 시몬 볼리바르의 절규를 허투로 듣지 않고 무장혁명 속에서도 농민들을 교육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야."


화강암 석재 기둥과 흰색 벽들 사이로 난 큰 문고리와 청동 못이 박힌 삼나무로 만든 거대한 문을 통해서 철진과 펄이 자유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에 툼바의 활쏘는 동상과 분수대가 있는 마당이 있었다. 자유의 집은 중앙 마당 주변을 긴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짐! 그런데 왜 이곳을 자유의 집이라고 부르는 거에요?"

"자유의 집, 카사 데 라 리베르타드에서 볼리비아의 독립 선언이 이루어졌고, 시몬 볼리바르는 이곳에서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했어. 그래서 이곳을 자유의 집이라고 부르게 되었지."


철진과 펄이 독립 선언이 있었던 방으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조각과 금박을 입힌 천장과 거대한 샹들리에, 호화로운 의자들이 공간을 장식하고 있었고, 계속 안으로 들어가자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 중앙에 있는 Simon Bolívar의 초상화가 보였다. 볼리바르의 초상화를 본 후 수 톤에 달하는 기념비적인 볼리바르 동상이 있는 방과 볼리비아의 또 다른 독립 영웅 수크레의 초상화도 보고서 한 다른 초상화 앞에 섰을 때, 펄이 철진에게 질문을 했다.


"짐! 왼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고, 오른 손에 긴 칼을 들고 있는 저 여자는 누구죠?"

"Juana Azurduy de Padilla야. 후아나 아수르두이는 남편 마누엘 아센시오 빠디야와 함께 볼리비아와 북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게릴라 전사였어."


후아나의 초상화 밑에는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국기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초상화에서 그녀가 든 장검이 유리 관 속에 들어있었다. 자유의 집에서 철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세계 정세 속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아직은 더 몸으로 부딪혀서 경험할 때라고 생각하고서 결론은 내리지 않은 채, 자유의 집을 나와서 인근 명소들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높이 솟은 시계탑과 스테인드글라스, 기하학적인 무늬의 돔 형태의 천장이 아름다운 바실리카 성당과 성당의 실외에서 아름다운 수크레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 펠리페 네리 성당, 산타클라라 수녀원 박물관, 마요 광장, 보석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짐! 저 배고파요. 어디 가서 뭐 좀 먹고서 다시 움직이면 안 될까요?"

"왜 안 되겠어? 그렇게 하자."


철진과 펄은 나티바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외관도 실내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멋진 곳이었다. 철진은 웨이터에게 메뉴판에 있는 전채 요리 세 가지와 메인 메뉴 여섯 가지와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저 손님! 이건 두 사람이 먹기에 너무 많은데, 정말 다 드실 수 있겠습니까?"

"네, 걱정하지 마시고 전부 다 갖다주세요."


전채 요리로 훈제 감자와 또르띠야, 닭 가슴 살, 곱창 등으로 된 타코가 내어져 왔다. 나오자 마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삭해버린 그들의 모습을 보자 웨이터는 정말이지 귀신에 홀린 듯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그것은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임을. 메인 요리 여섯 가지가 나오자마자 마치 그 요리가 도화지 위에 그림들을 지워나가듯 순식간에 식탁 위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그 많은 요리들을 그렇게 빨리 먹어 치우는 것도 놀랍지만 입이나 옷은 물론이고 식탁에 흘리거나 음식이 묻은 흔적이 전혀 없이 정결하면서도 너무 매혹적으로 음식을 폭풍 흡입하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짐! 저 사람 아무래도 기절할 것 같아요? 우리 짠하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이수가 만족하면 됐어. 무럭무럭 자라서 건강하게 태어날 우리 이수를 위해서 건배!"

"건배!"


철진과 펄이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자 묵묵히 뒤를 따르던 블라드 백작이 철진에게 죽는 소리로 간청을 했다.


"저, 로드! 저 좀 살려주십시오. 배고파서 미칠 것 같습니다. 몇 일 동안 피를 마시지 못했더니 정말이지 죽을 맛입니다."

"죽는 소리 하고 있네. 네가 왜 죽어? 이 인근에 평화롭게 네 갈증을 해결해 줄 장소를 알아?"

"네, 로드!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제 갈증을 해갈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요."

"그곳이 어디야?"

"Banco de Sangre de Sucre 헌혈 병원 입니다."

"참! 용케도 그런 건 잘 알고 있군. 앞장서!"


철진과 펄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블라드 백작을 데리고 헌혈 병원으로 가서 블라드 백작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줬다. 아직은 서로가 서로에게 알아낼 것이 있었기에 불편하지만 공생 하면서 동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였다.


펄은 블라드 백작이 피를 보자마자 흉폭한 야수처럼 변해서 난폭하게 피를 마셔대는 그 모습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철진은 모기나 파리 보듯이 블라드 백작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피를 흠뻑 마시고 나자, 창백하게 말라 비틀어진 블라드 백작은 혈색이 돌면서 귀족 같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했다. 블라드 백작은 앞으로 있을 여정을 생각해서 여분의 것도 챙겨두었다.


다시 길을 나선 철진은 추키사카 지방법원과 시몬 볼리바르 공원, 공원 바로 옆에 볼리비아 대법원, 산토 도밍고 성당, 레골레타 수도원, 게레오 맨션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블라드! 수크레 인근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으로 다 소환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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