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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

비정한 현실

by 김하록

[서울지방경찰청 청장실]


"야! 권도식! 마약 사범 잡아오라고 보냈더니, 왜 빈손으로 왔어?"

"뭘 빈손으로 와요? 예?"

"위에서 지금 너네들 업무 태만으로 정식으로 문책하겠다고 노발대발 하고 있어?"

"업무 태만 같은 소리하고 있네. 토요일에 이태원 한번 가보셨어요?"

"내가 거길 왜 가? 난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이야."

"그럼 할로윈 파티로 이태원에 사람이 미어터진다는 건 안다는 소리네요?"

"그게 마약 사범 검거랑 무슨 상관이야?"

"지금 생각이라는 거 일도 안 하고 말씀하시는 거 아시죠?"

"뭐, 이새끼야!"

"이 새끼 저새끼 하지 마세요! 청장님! 그날 이태원에 가봤으면 그런 날 거리 질서 유지하는 경찰들 빼서 은밀히 마약 사범 단속하라는 지시가 완전 개소리란 건 알겠네요. 미친 새끼들이 정신이 나갔지. 차기 대선 후보인 법무부장관 실적 올려준다고 애먼 사람들 다 죽이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왜 질서 유지하는 경찰들을 다 빼냐고? 그날 해밀튼 호텔 옆 T 자형 골목에서 우리 마약수사계 요원들의 질서유지 행위가 없었으면 무수한 사람들이 깔려 죽었을 겁니다. 압사 사고가 언제 터져도 터질 상황이었다구요. 그리고 클럽에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가더라도 체포해서 그 인파를 뚫고 데리고 나오기도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청장님도 정신 차리세요! 저 위에 있는 개새끼들과 똑같이 굴지 말구요, 보신도 정도껏 하시라구요. 이만 할 일이 태산 같아서 나가보겠습니다."

권도식은 청장실의 문을 쾅 닫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저저 버르장머리 하고는! 에잉! 얼른 내보내든지 해야지 내가 제명에 못살지."

[법무부 장관실]


"야! 왜 아무런 소득이 없어? 그날 경찰들 거리에서 치우고 은밀히 잠복 수사해서 마약 사범들 대거 소탕하라고 했잖아?"

법무부장관 허도안이 내막도 모른 채, 경찰 청장을 쪼아 대고 있었다.

"네, 장관님! 그게 너무나 많은 인파가 몰려서 사람들이 파도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지경에 처해서 한 발짝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상황이었답니다. 클럽에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가서 체포하더라도 데리고 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대신에 권총 소지한 알바니아 갱들 검거하고 그들에게서 소정의 마약을 압수한 것으로 발표하고, 마약청정국을 유지하고 마약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장관님의 결의에 찬 모습을 브리핑으로 마무리하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음!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그 권도식이 빨리 교통계로 강등 시키도록 해!"

법무부장관 허도안이 권도식을 교통계로 보내버리라고 하자, 강학중이 법무부장관 허도안에게 권도식은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했다.

"저, 장관님! 그 권도식이는 제가 이번에 부산고검장으로 발령 나면, 행정안전부 장관이 권도식이를 부산경찰청 소속 직위 없는 마약수사계 요원으로 인사조치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권도식이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그래? 그럼 권도식이랑 현재 마약수사계원들 전부 다른 지방으로 갈가리 찢어서 흩어놔! 권도식이랑 조웅현이만 빼고, 다 교통계나 파출소로 발령하도록 해! 전부 식물인간처럼 힘 못 쓰게 어떤 보직도 맡기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부산경찰청 마약수사계]


"서울경찰청 광수대서 마약수사계 계장까지 하다가 저 같은 후배 지시 받기도 뭐 할 테니까 그냥 프리로 뛰세요."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 장도한 계장이 보직도 없이 좌천되어 부산으로 발령 난 권도식을 보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쓸만한 파트너 한 놈 붙여줄 테니까 알아서 수사하고 다 하시라 이겁니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 건 뭡니까? 그 어쩌다 위에 찍혀 가지고 참 여러모로 불편하게시리!"

"흠흠! 계장님 정도 되면 잘 아실 겁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게 출세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 말이죠."

"앞으로는 다른 계원들처럼 하대하겠습니다. 조직 생활을 오래 하셨으니 잘 감당하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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