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를 품다

가공할 무기 La Poesia

by 김하록

"안녕하세요? 아이린 언니! 저 펄이에요. 먼저 이해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펄이 영상으로 아이린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리며 인사를 했다.


"펄! 대체 한국말은 언제 또 배운 거야?"

"한 3개월 정도 됐어요."

"맙소사! 3개월밖에 안됐는데, 한국어를 나보다 더 잘한다는 말이야? 말도 안돼!"

"아니에요. 아이린 언니의 한국어는 완벽해요. 우리 사이좋게 가깝게 잘 지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응, 펄! 나도 짐의 아버님의 유언도 잘 알고 있어. 가슴 아픈 사연도 있고 하니까 짐이 다른 여자를 만나더라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있었어. 그래도 기분이 묘한 건 어쩔 수 없나 봐."

"네, 언니! 이해해주시고 받아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 펄! 우리 사이좋게 잘 지내자. 소연 언니도 이렇게 우리를 따듯하게 받아주실까?"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철진은 아이린에게서 난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이도의 돌잔치에 찾아가겠다고 약속한 후 아이린과 펄이 잠깐 동안 인사를 하고 전화를 마쳤다. 내친 김에 소연에게도 기억에 남아있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하였으나, 아직은 때가 아닌 듯 연락이 닿질 않았다.


그 사이 Jewels호는 검은 섬, 이슬라 네그라에 도착했고, 배에서 내려서 작은 보트로 갈아탄 철진과 펄은 카사 데 이슬라 네그라로 나아갔다. 세찬 파도 소리와 해변에서 부서지는파도의 포말을 뒤로 한 채로 철진과 펄은 네루다가 살았던 집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네루다의 집 근처에 가까워지자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용설란의 꽃대가 철진과 펄을 반겨주었다. 네루다가 생전에 그렇게 사랑했다는 용설란은 평생 한 번 꽃을 피우고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던가. 철진과 펄은 네루다와 그의 아내 마틸데가 나란히 묻혀있는 무덤에서 잠시 묵도하며 시인이자, 외교관이면서 정치가이자 혁명가였던 파블로 네루다와 첫 만남을 가졌다.


네루다의 집 앞에는 조그마한 배와 크고 작은 여섯 개의 종들이 달린 삼각형 모양의 틀 두 개를 반대로 교차 시켜 만든 별 모양의 종 거치대가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짐! 네루다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네루다는 저 바다에 압도되어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심장이 울부짖는 듯한 느낌을 받았노라고 회고했어. 노년의 네루다에게 저 바다는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한 감동과 서사를 지닌 시이자 그 이상의 깊음과 울림을 지닌 저 너머의 세상이었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저희에게도 바다는 여전히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간직한 세상인데, 하물며 노년의 네루다에게는 말할 수 없이 거대하고 위대한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 같아요."


철진과 펄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네루다가 창작에 몰두했던 집안으로 향했다.


"이 침실이 바로 네루다가 '살아왔음을 고백하노라'는 저서의 상당부분을 집필한 곳이야. 그리고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의 부하들에게 체포당한 곳이기도 해."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네루다는 1970년 7월에 전립선에 종양이 있음을 알았고 의사가 정밀 검사를 받도록 권했지만, 두려움에 잠식되어 다시는 그 의사에게 가지 않아서 결국 피노체트에 의해 체포된 후 12일이 지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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