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전쟁

by 김하록

철진은 주문을 하고는 자리로 돌아와서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고소한 냄새의 정체에 대해서 블라드 백작에게 물었다.


"좋아. 오늘 여기 온 뱀파이어들은 모두 소멸되었으니까 오늘 밤 일은 어디에도 새어나가지 않았을 거야. 아까 보아하니 이들이 너를 자신들의 왕처럼 떠 받들던데 말이야."

"네, 그 고대부터 존재한 악마를 제외하고는 제가 뱀파이어들 중에 정점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니 제 말을 잘 따를 것입니다."

"동족을 죽이는 데 앞장서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나?"

"로드께서도 알다시피 저는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악마가 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최초의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는 그저 불사의 존재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다른 뱀파이어들에게 제가 딱히 연민의 정을 느낄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그들을 동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겠어. 그건 됐고 원래 우리의 여정은 뱀파이어들을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야. 체 게바라가 걸었던 자취를 따라가며 그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한 것이지. 자네가 오래 살았으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의 지리와 역사도 잘 알겠지? 혹시 주로 유럽에 살아서 잘 모르는 건가?"

"아 아닙니다. 잘 알고 있으니 제가 앞장서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거의 육백 년을 살았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여기서 할 일을 다 마치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간다. 거기서부터 더러운 전쟁 기간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비델라가 자행했던 죽음의 비행을 역행하여 라플라타 강변까지 억울한 넋을 위로하는 진혼 비행을 할 거야."

"짐! 그 더러운 전쟁이라는 게 어떻게 시작된 거에요?"

"아르헨티나가 칠레, 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중남미 우익 독재 정권과 함께 좌파 척결을 목적으로 '콘도르 작전'을 펼쳐서 10만여 명을 살해하고, 40만여 명을 고문했는데, 이것을 더러운 전쟁이라고 불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납치, 감금되거나 실종되기도 했어."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런 짓을 했다는 건가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주도한 거야. 미국은 중남미의 안정을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고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군사 독재 정권을 적극 지원해주었어. 그 과정에서 미국 중앙정보국인 CIA는 적대국인 이란에 무기까지 팔고 또 심지어 마약까지 팔아서 그 대금으로 중남미의 군부를 지원하고 무기까지 공급해주었어. 그러니까 더러운 전쟁은 사실상 미국이 주도한 거라고 봐야지."

"세상에 미국이란 나라는 정말 끔찍하군요."

"맞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자국에 유리하면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다른 나라에 강요하기까지 하면서 언제든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십 만 명을 학살하는 것을 지원해주기도 하고 재판도 없이 납치해서 감금하거나 고문과 폭행, 심지어 살해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나라가 미국이니까."

"도대체 어떻게 재판도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가 있었던 거죠?"

"일종의 집단 광기와 같은 거지. 임산부, 여자, 어린아이, 노인, 이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순진무구한 서민들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잡아 들여서 340여 개의 비밀 수용소에 감금한 후 고문하고 죽였어. 총으로 쏴서 죽인 다음에 라플라타 강이나 바다에 던져버리기도 했고, 심지어 곧 석방될 거라고 안심 시킨 뒤 마약을 먹이거나 마취제를 주사하여 발가벗긴 채 컨테이너에 몰아넣고 발에 무거운 추나 돌덩어리를 달거나 컨테이너 안에 가두어 놓고 시멘트로 다리를 발라서 굳힌 다음에 산 채로 강이나 바다에 던져버리기도 했어."

"세상에 사람들을 대놓고 그렇게 납치하거나 연행할 수 있는 거에요?"

"대부분 집에서 납치되었고,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많이 납치되었어. 심지어 거리에서 대놓고 납치된 경우도 4분의 1 정도 된다고 해.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미국과 중남미 군부 독재 정권의 미친 광기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중남미 대륙을 살육의 광기로 뒤덮어버린 거지."

"아 정말이지 억울하게 짐승처럼 짓밟혀서 처참하게 죽은 영혼들이 불쌍해서 어떡해요?"

"납치할 때는 여러 명의 군인들이 총으로 무장을 하고 늦은 밤에 집으로 들이닥쳐서 연행할 사람을 가족들이 보는 데서 고문했다고 해. 항의하는 가족들을 폭행했을 뿐만 아니라 연행한 후에는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약탈했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그 지역 전체를 정전시키기도 하고 헬기를 띄워서 공중에서 맴돌게 하기도 했대."

"사람들은 그런 학살을 당하고도 그 악마들을 피해서 도망가지 않았나요?"

"왜 아니겠어.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외국으로 망명했지만, 탈출하다가 잡혀 죽은 사람들이 많았고 극소수만 성공했어. 미국, 유럽 등으로 탈출한 사람들도 범죄인 인도 협약으로 송환 돼서 처벌되었지. 게다가 요원들을 외국으로 파견해서 납치해 죽이기까지 했고, 이들을 도와준 미국인과 유럽인들 마저 살해하기도 했어."

"정말이지 세상이 완전히 미쳤군요. 미친 광기가 이 중남미 국가들을 삼켜버린 거네요?"

"그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있었어. 더러운 전쟁 기간 동안에 사망하거나 실종한 사람들의 30%가 여성들이었는데, 이들은 끔찍한 성고문을 당했어. 군부는 군인들, 경찰들, 심지어 흉악범들까지 동원해서 여성들에게 성폭행과 윤간을 자행했다고 해. 반정부인사들에게는 아내와 딸이 강간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했고, 여성들에게 동물 발정제와 최음제를 투약한 후 군견이나 경찰견으로 수간시키는 악행까지 저질렀다고 해. 게다가 갓 태어난 아기도..."

"아아 그만! 그만요. 우리 아기에게 더 이상 그런 더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 않아요. 이제 그만하셔도 충분해요."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하록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삶과 생존의 문제에서 갈등과 고뇌를 자양분 삼아 삶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 김하록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11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0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4화피의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