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 여행] Day 7 - 치앙마이
어제 늦은 저녁, 나의 친구 S가 밤비행기로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친구 S는 나는 어릴 적 술친구이자 서로 까고 까이는 맛에 만나는 격이 없는 사이다. 서로 딱히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라 거진 5년 동안 연락이 오고 가지 않다 태국에 왔을 때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안 그래도 이 여행이 조금 심심할 것 같았던 나는 ”너도 오면 좋겠다! “라고 친구에게 툭 던졌는데, 그 친구는 진짜로 비행기표를 사버렸다.
'아니 잠깐, 진짜 온다고?ㅋㅋㅋ' 나는 속으로 너무 웃기면서도 친구의 즉흥적이고 엄청난 실행력에 감탄하며 '아 맞다 이런 친구였지!!' 했다. 나는 친구가 치앙마이를 진하게 느낄 수 있도록 최적의 위치에 숙소를 예약했다. "아싸 친구 온다!"
어제저녁 친구를 만났을 때, 분명 5년 만에 보는 친구지만 마치 저번 주에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친구만 만나면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건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를 화나게 하는 재주를 타고났는지 시도 때도 없이 빡치고 빡치게하며 서로에게 5년 동안 아껴둔 욕을 정성스럽게 해댔다. 나를 예술적으로 까주는 그 친구가 어쩌면 그리웠는지 나는 까이면서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사실 시작은 항상 내가 먼저 하는 것 같다ㅎ)
나는 치앙마이 여행선배로서 열정적으로 친구를 리드하며 밤 12시까지 선데이 마켓과 노스게이트 재즈 바를 돌았다. 노스게이트 재즈 바에 처음 갔을 때의 감동을 친구가 느끼길 바랐는데, 아쉽게도 그 정도의 음악이 아니었다. 친구가 재즈를 들으며 자는 것 같을 때쯤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6시에 일어난 나는 친구가 아직 자고 있겠다 했는데 친구에게 금방 연락이 왔다. 친구는 나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 듯했다. 동생과 함께 여행할 때는 동생이 깰 때까지 두세 시간 정도를 혼자 기다려야 했는데, 심심한 아침시간을 같이 보낼 친구가 생기니 든든했다. 우리는 보슬비가 내리는 치앙마이의 새벽 거리를 돌아다니며 축축한 비냄새와 축축해지는 발가락을 즐겼다.
친구에게 가고 싶은 곳을 물으니 친구는 그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고 어디든 가자고 했다. 그래서 일단 내가 가보고 싶었던 쿤케쥬스바에 갔다.(호텔에서 1분 거리!) 우리는 스무디 볼을 2개나 시켜 배부르게 먹고(사실 친구가 별로 안 좋아해서 내가 둘 다 먹었다. 변비가 싹 나았을 지경) 핑강 쪽에 있는 코끼리 매장까지 걸어갔다. 우리가 찾은 코끼리 매장의 코끼리들은 동생과 야시장에서 산 45밧짜리 코끼리와는 차이나는 고퀄리티였다.
점심으로는 저번에 핑강 근처를 지나칠 때 야경이 멋있어 저장해 뒀던 식당에 방문했다. 저녁에는 사람이 북적여 보였는데 점심에는 우리뿐이었다. 나는 해외에서 음식을 잘 못 먹는다는 친구에게 가장 무난한 파인애플 볶음밥과 팟타이를 시켜주었는데 친구가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사실 이것도 못 먹으면 나한테 이 사건으로 10년은 고통받았을 터였다.) 우리는 비 내리는 핑강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다 이야기를 하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은 후 친구가 찾은 카페를 가며 와로롯 시장을 구경했다. 저번에 동생과는 와로롯 시장의 겉모습만 보고 갔었는지 저번에 못 봤던 공간을 발견하여 실컷 구경했다. 옷에서부터 건과일까지 다양한 것을 파는 것이 한국의 남대문시장 느낌이랄까?
친구가 찾은 카페는 옷가게 2층에 자리 잡은 인도풍 인테리어가 인상 깊은 카페였다. 우리는 커피와 차를 시키고 카페 곳곳을 구경했다. 카펫부터 소파 쿠션 식기류까지 온통 인도풍이었는데 사진 찍기도 좋고 사람도 없어 우리는 오랫동안 그곳을 즐겼다. 친구와 오랜만에 진지한 대화를 했는데, 서로의 인생을 돌아보니 5년이라는 시간이 마냥 짧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저녁에는 내가 좋아했던 Ohkajhu 님만에 친구를 데려가 풀을 듬뿍 먹고, 어제 재즈 바의 아쉬움을 메꾸기 위해 치앙마이에서 최고 고급스럽다는 재즈 바로 향했다. 재즈 바로 걸어가면서 야시장을 지나쳤는데, 조그만 호수 주위에 돗자리를 깔고 식사를 하는 풍경이 꽤나 정겨웠다. 다음에는 여기 와서 항아리 샤브를 먹어보고 싶었다. Moment's Notice Jazz Club은 밖에서부터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움이 풍겨져 나왔다.
문을 여는 순간 잔잔한 피아노 재즈가 들리며, 그 공간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취할 정도의 멋진 내부 공간이 나왔다. 낮게 깔린 조명 속 두 팀 정도가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시고 있었는데 잘 차려입은 모양이 기념일을 축하하는 자리인 듯했다. 우리는 문 하나를 더 열고 들어가 공연장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7시쯤 도착했는데 시간이 아직 이른 지 공연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자리는 모두 예약석이라(많이들 예약을 하고 방문하나 보다!) 다소 부담스럽지만 맨 앞줄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직원이 7시 45분부터는 어쿠스틱 공연이, 9시 30분부터는 재즈공연이 있을 거라고 안내해 주었다.
친구와 하이볼을 한 잔씩 시키고 아무도 없는 공간을 만끽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공연이 시작됐다. 5:5로 갈라진 긴 장발에 얇은 금테 안경, 그리고 에스닉 셔츠까지 꼭 우리 아빠 젊을 적 패션과 비슷해 보였다. 그가 튕기는 기타 줄에 더해진 감미로운 목소리는 순식간에 우리의 오감을 사로잡았다.
‘이 목소리 참 맛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흠뻑 취해 친구에게 말했다.
“지금 저 사람이 프러포즈하면 바로 결혼할 거임 “
“응 내 거임 내가 먼저 무릎 꿇음. “
친구가 지지 않고 받아쳤다.
우리는 또 낄낄 웃으며 그의 목소리에 몸을 맡기고 손가락을 튕겼다. 앞뒤옆으로 왔다 갔다 하는 나의 목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손가락 들을 누군가 보면 자칫 오버스럽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가만히 있어? 음악이 이렇게 좋은걸?
친구와 다닌 치앙마이는 내게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동행이 바뀔 때마다 그들의 눈으로 보는 치앙마이를 함께 느낄 수 있어 참 좋은 것 같다. 내일은 치앙라이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