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 여행] Day 14 - 치앙라이
어젯밤 늦게 이곳에 도착한 우리는, 밖이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주변이 파악되지 않으면 약간 불안병이 도지는 쪽이라 잠자리가 그다지 편안하지는 않았다.
'저 밖에 무엇이 있을까? 누가 갑자기 들어올 수도 있나? 다른 방갈로와는 얼마나 가까운 거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예 전혀 다른 생각으로까지 이어졌고, 나의 시냅스는 밤새 활동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잤는지 안 잤는지도 모르게 날이 밝았다.
'타닥타다닥'
빗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제 혹시 몰라 꼼꼼하게 쳐두었던 방갈로의 커튼을 하나씩 걷었다.
눈앞엔 축축하게 젖은 나무들과, 커다란 이파리, 아직 흰 이불을 덮고 있는 무성한 산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와, 산 속이구나.'
밖으로 나가 어제 그토록 궁금해했던 방갈로의 형태와 주변을 제대로 확인했다. 나무와 돌을 형상화한 방갈로는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졌다. 주변은 정말 자연뿐이었다. 다른 방갈로도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의 존재를 잘 모를 정도였다. 역시, 또 괜한 걱정에 잠을 못 잤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뱉었다. 하~ 그래 이게 휴양이지. 드디어 휴양하러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정말 오로지 나에게 집중해 보자고 다짐했다.
엄마와 나는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리조트를 산책했다. 리조트는 방갈로 여섯 채와 리셉션, 그리고 식당으로 이뤄져 있었다. 방갈로들끼리는 서로 잘 보이지 않게끔 돼 있었고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서로 높이도 달랐다. 방갈로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면 어제는 캄캄해서 보지도 못했던 리셉션과 사장님 식구들이 사는 세련된 주택이 있다. 사장님 집 옆쪽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시원한 폭포 소리가 들린다. 계단 꼭대기에 다다르면 인공폭포가 시원하게 물을 실어다 나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폭포는 계단식 연못을 따라 저 밑에까지 이어졌다.
폭포 옆에 자리 잡은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 리조트엔 우리뿐인 듯했다. 조식은 주문하는 방식이었고, 식빵만 따로 구워 먹을 수 있게 세팅되어 있었다. 엄마는 아메리칸식 브런치를 나는 밥이 들어간 돼지고기 맑은 국(?)을 시켰다. 식빵을 구워서 먹고 있는데, 망고와 주스가 먼저 나오고 이어서 식사가 나왔다.
”어우, 여기 너무 맛있는데? “
조식뷔페에는 수십 가지가 있어도 먹을 만한 것이 하나 없을 때도 있는데, 여기는 하나를 시켜도 오감을 만족하니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주문한 돼지고기 맑은 국은 간도 심심하니 내 입에 딱 맞았고, 며칠간 불편했던 속을 편안하게 잠재워주었다.
속이 든든하니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역시,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우리는 다시 방갈로에 돌아와 어제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을 까먹었다. 여기 와서 망고스틴과 뾰족한 갈색 동그라미 과일을 까는 방법을 익혔다. 먼저 망고스틴은 꼭지를 아래로 하게 한 다음 엄지를 사용하여 가로선을 그으며 꾹꾹 누른다. 그런 다음 모자를 벗기듯 위에 부분을 들어 올리면 뽀얀 속살이 나온다.
뾰족한 갈색 동그라미 과일은(이름을 모름ㅎㅎ) 양손으로 위아래를 잡은 다음 뚜껑을 따듯 비틀어 준다. 손이 살짝 아프지만 익숙해지면 괜찮다. 여하튼 맛만 있으면 뭐든 뭣하랴.
엄마는 방갈로를 돌아다니며 한참 이 방갈로에 대해 칭찬을 했다.
"엄마도 이런 원목으로 만들어진 집에 살고 싶다~ 여기는 나무로 되어 있어서 그런가 하나도 안 습하네!"
엄마말을 듣고 보니 이곳의 모든 가구는 원목이었다. 한국이었으면 무지 비쌌을 것 같은 생김새...! 이 방갈로는 엄청 깨끗하거나 잘 관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욕실에는 물때도 있고, 소파 커버에는 얼룩도 있고, 조명도 어둡다. 그럼에도 여기가 좋은 것은 자연 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가격에 이 정도 시설이면 대만족이다!(1박에 5만 원 정도였다.)
엄마와 가끔 이야기하는 것은 엄마나 나나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고난 에너지가 별로 없어서 정말 어딘가 콕 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며 에너지를 채워야 하는 사람들인데, 가끔 그것을 까맣게 잊고 인생을 와다다다 살다 보면 꼭 신체적으로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그래서 오늘의 목표는 푹 쉬며 나에게 집중하기!
우리는 목욕을 거하게 한 번씩 하고, 창가에 노트북을 세팅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즈를 빵빵하게 틀고 노트북 앞에 경건하게 앉아 창 밖을 바라봤다. 산과 구름과 바람... 이 온도, 이 습도~흠~아주 합격이다.
우리는 각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 후, 근처에 있다는 카페로 향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분명 걸어서 100미터라고 했는데... 엄청난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올라 이런 곳에 카페가? 하는 곳에 도착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아마 오토바이로 체감 100미터이셨던 듯...)
카페에서는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나는 시내를 내려다보며 내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해냈다. 도대체 윗사람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걸 모르는 거야? 이해가 안 간다! 등의 나의 어리광을 듣던 엄마는 멋진 경관을 예를 들며 말을 했다.
"딸, 봐봐. 우리가 이 높은 곳에 있으면 저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여. 리더란 그런 거야. 넓게 보고 멀리 보면서 좋아 보이고 안전한 길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지. 근데 문제는 리더도 그 길을 안 가봤다는 거야. 실제로 사람들이 그 길을 갔더니 발이 푹푹 빠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런 것을 리더에게 현명하게 전달하는 것도 능력이고, 그런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도 능력이야. 그 사람들은 능력이 없네, 왜 그런디야~"
"그래! 대체! 왜! 윗사람들은 소통을 못하는 거야!"
라고 외치다 나도 혹시 그런가? 하는 생각에 급 반성 모드가 되었다.
"그래... 소통... 소통하자!"
나는 엄마와의 대회 후 잠잠해진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리조트 식당에 갔다. 조식을 먹은 후 사장님 요리에 대한 신뢰가 차고 넘쳤던 우리는 사장님께 가장 맛있는 것을 추천받아 시키고, 조식 때 먹은 맑은 국이 너무 맛있어서 이번엔 미역이 들어간 맑은 국을 시켰다.
역시나... 사장님 요리실력 쏘우 나이스!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맛이었다. 그 담백하고 짭조름하고 달달하고 맑은...! 모든 것이 적당하고 모든 것이 조화로운 그 맛...@ 여기가 집 앞이었으면 맨날 갔다...
훌륭한 사장님 내외 덕분에 우리는 여행의 쉼표를 묵직하게 찍을 수 있었다. 엄마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마냥 사장님의 번호를 소중하게 저장했다. 넘흐좋아 :)
[오늘 등장한 장소]
1) Bura Resort Chiang Rai
-위에서 내내 칭찬을 아끼지 않은 리조트. 단,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 제일 가까운 반두마켓에서 이것저것 사가야 함. 사장님께 미리 연락을 드리면 받두마켓 정도는 픽업을 해주신다. 올라가는 길에 세븐일레븐 들려도 된다고 하심! 체크아웃할 때도 사장님이 어느 정도까지 데려다주셨다. 너무너무 스윗하신 사장님 내외 덕분에 힐링 제대로 하고 가는 곳. 근처에 자연 폭포도 있고 폭포 주변으로 트레킹 코스가 잘 돼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면 트레킹도 좋을 듯! 왕 추천!
https://goo.gl/maps/aNAhRPS9y8CjTyt38
2) Idrin Cafe
- 음료가 특별하진 않지만, 뷰는 특별한 곳. 위층이 뷰가 더 좋으니 날씨가 좋다면 위로 올라가자!
https://goo.gl/maps/vQgK5yqgEKJHSNR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