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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비 Aug 23. 2023

지쳐 쓰러지다

[태국 북부 여행] Day 13 - 치앙라이

 오늘은 친구 S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친구 S는 치앙마이행 그린버스를 기다리며 즉흥적으로 온 이번 여행이 너무나 재밌고 알찬 여행이었다며 태국이 이렇게 좋은 곳인지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선뜻 여행에 동행해 주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괜스레 더 있다 가라고 붙잡았다.


 친구 S는 그렇게 한국을 갔고, 한국에 가서는 한국이 너무 덥다며 툴툴대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은 35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여름엔 치앙마이와 치앙라이가 한국보다 덜 덥다. 여기는 우기여서 구름이 해를 많이 가려주기도 하고, 해가 있더라도 최고기온이 30도 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휴! 여름에 어떻게 동남아를 가?라고 하지만, 실제로 한국보다 시원한 동남아가 존재한다!


 나는 친구를 보내고 엄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말 그대로 지쳐 쓰러졌다. 어제저녁 와인을 두 병이나 마신 탓도 있지만(나는 한 3잔 마셨나...) 2주 동안 쉼 없이 여행했던 피로가 한 번에 거센 파도처럼 몰려와 나의 온몸을 장악한 것이 컸다. 환갑인 우리 엄마는 당연히 나보다 몸상태가 더 심각했다. 우리는 누워서 에고에고~죽겠다~하며 곡소리를 냈다. 컨디션 관리의 완벽한 실패였다.


 근데 우리를 더 못 쉬게 만들었던 건, 또다시 짐을 싸서 다른 숙소로 체크인을 하러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남은 이틀은 엄마와 단 둘이 좋은 곳에서 휴양을 해보겠다고 산속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은 어딜 가기는커녕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우리는 리조트를 그냥 취소할까? 하다가 그래도 돈이 아깝지!라는 생각에 컨디션을 회복하는 대로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컨디션을 회복하기는커녕 엄마는 그새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했고, 나는 녹아내린 몸뚱이를 이끌고 엄마가 새로 구입한 프린터를 설치하느라 애를 먹었다.


 "후! 우리 안 되겠다! 마사지를 받자!" 엄마가 모든 일에 stop을 외쳤다.


 우리는 일단 모든 걸 던져놓고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리조트 근처에 구글 리뷰가 5점인 마사지샵을 발견하여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우리는 후다닥 짐을 싸고(이 와중에 리조트 가서 일한다고 둘 다 노트북을 챙겼다...ㅎ) 마사지샵으로 향했다.


 마사지샵은 Nit라는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곳이었는데, 마사지사 아주머니 한 분만 계셔서 엄마가 1시간 30분을 받고, 나는 30분만 받기로 했다. 나는 엄마가 마사지를 받는 동안 병든 닭처럼 옆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근데 마사지를 하는 Nit 아주머니가 어찌나 수다스럽고 재미있으신지 나는 도저히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Nit 아주머니는 호기심도 많아 질문도 많았고(영어를 나보다 잘하심)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중간중간에 엄마가 아파하는 부위가 있으면 꼭 나한테 와서 한 번씩 눌러주며 "엄마가 아프다고 한 곳이 여기야!"하고 가시기도 했다. 태국어 속성 과외도 해주셨는데, 쨉!(아파요) 마이 쨉!(안 아파요) 마이 뺀 라이~(괜찮아요) 닛 너이~(조금) 등을 배웠다. (여행하면서 정말 잘 써먹었다.)


 마사지는 또 어찌나 잘하시는지 우리 엄마 몸을 1시간 30분 만에 나름 정상 컨디션까지 올려놓았다. 그분은 알고 보니 특별한 마사지 자격증이 있으셨는데, 이때까지 받은 마사지와는 정말 차원이 달랐다. 엄마가 끝난 후, 나도 30분 정도를 받았는데 그저 시원한 것을 넘어서 재활치료를 받는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쨉! 쨉!"을 외쳐도 Nit 아주머니는 그 부위가 안 좋은 거라며 더 풀어야 한다고 했다. (오호...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한 마사지사는 처음이야!)


 아주머니는 엄마와 내 몸을 마사지하면서 어디가 안 좋은지 거의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아픈데 나는 안 아픈 부위가 있고, 나는 아픈데 엄마는 안 아픈 부위가 있었다. 약속한 2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우리는 Nit와 수다를 떨었다. Nit가 혼자 마사지하는 법도 알려주고, 서로 태국어와 한국어를 알려주고, 집안이야기도 하고, Nit의 사업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는 Nit와 꽤 친밀한 사이가 된 듯했다.


 엄마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마냥, Nit의 번호를 소중하게 휴대폰에 저장했다. 엄마와 같이 타지에 사는 외국인에겐 여기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소중한 인연일 것이다. 오늘 우리 둘 다 너무나 힘들고 지쳐있었는데, Nit을 만나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있었다. 오늘 같은 날 Nit를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Nit와 엄마의 인연이 더욱 깊어지면 좋겠다.


 우리는 Nit의 도움을 받아 리조트 사장님의 픽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밤 9시가 되어 도착한 산속 리조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내일 아침이 돼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어둠 속에 뚝 떨어진 방갈로 속에서 우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오늘 간 곳 정리]


1) Nit 아주머니의 마사지샵

-혼자 운영하시며, 인원이 많으면 다른 마사지사를 불러 주신다.  다른 곳이서 오시는 마사지사한테도 치앙라이를 떠나는 날 한 번 받았는데 너무 만족스러웠다. Nit는 그 지역에 사는 외국인 단골손님이 되게 많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 예약을 필수로 하고 가는 것이 좋다. 한 시간에 200밧(8천 원)!

https://maps.app.goo.gl/XQ2FV5A35XShDkgc7?g_st=ic


2) 반두 마켓

- Nit 마사지샵 옆에 있는 시장. 리조트를 가기 전 늦은 저녁거리를 사러 갔다. 까오니야오(찰밥)와 주황색 soup과 꼬치를 샀다. 까오니야오와 꼬치 조합은 항상 옳다!!!  저번에 여기서 과일도 샀는데 싸고 맛있었다. 치앙라이에서 꽤 규모가 큰 시장이며 밝을 때 와야 상점 문이 다 열려있다.

https://maps.app.goo.gl/4tmPqbEi1fKZsvWP7?g_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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