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 여행] Day 15 - 치앙라이
오늘은 약 5개월 만에 만난 엄마와 다시 헤어지는 날이었다. 나는 가족 내에서 든든한 첫째 딸 포지션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 앞에서 눈물 보이는걸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 달리 나는 평소에도 눈물이 꽤 쉽게 차오르는지라... 벌써 어제부터 몇 번이고 울뻔한 고비를 겨우겨우 넘기고 있었다. 그중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바로 어젯밤 잠들기 직전이었다.
엄마와 나란히 누워있던 나는,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 아쉬워 졸려하는 엄마 옆에 찰쌀 붙어 괜스레 애교를 부렸다.
"엄마~ 오늘이 엄마랑 자는 마지막 날이야~ 오또케... 넘 슬포!!!!"
"그러네~ 우리 딸 와줘서 너무 고맙다~"
엄마는 눈을 감은채 서른 살 큰 아기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의 딱딱하고 주름진 손바닥이 나를 쓸어내리자, 이미 포화 상태였던 눈물샘에 위험 신호가 잡혔다.
'위험 위험'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눈물을 참기 위해 나는 엄마 팔을 몇 번 만지작거린 뒤 조금 떨어져 누웠다. 그리고 내 작은 눈을 최대한 치켜뜨고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방 안을 이리저리 훑으며 눈에 힘을 줬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후... 잘 참았다.'
방법이 먹혔는지 울컥했던 마음도, 눈물이 차오르던 눈도 잠잠해졌다. 나는 잠든 엄마를 두고 혼자 생각에 빠졌다. 엄마가 여기 와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도, 매일매일 생존과 적응의 문제에 부딪히지만 어찌어찌 잘 살아가는 것도 감사한 일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겪는 여러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딸, 진짜 신기한 게 엄마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항상 누군가 나타나 나를 도와. 근데 그 인물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들이야"
나는 엄마처럼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엄마를 보고 있자면 진짜 신이 엄마를 돕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엄마의 문제가 사람을 통해 극적으로 해결되는 사건들이 매일 반복된다.
매일밤 드리는 엄마의 기도를 신이 진짜 들어주는 걸까. 아니면 엄마가 인복이 많은 걸까.
여하튼, 어젯밤만큼은 나도 엄마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했다.
'우리 엄마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지내게 해 주세요. 아멘.'
눈물 참기 스킬(1)
-울컥 포인트가 되는 것에서 벗어난다.
눈물 참기 스킬(2)
-다양한 시각정보를 삽입하여 뇌의 주의를 돌린다.
눈물 참기 스킬(3)
-눈에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하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안구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렇게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자고 일어나니 엄마는 이미 일어나 거하게 목욕까지 마친 뒤였다. 우리는 리조트의 5점 만점짜리 조식을 먹고, Nit 아주머니네서 2시간짜리 마시지를 받고, 엄마 숙소로 돌아갔는데, 나는 그곳에서 또 예기치 못한 울컥 포인트를 마주하고 말았다.
엄마는 7평 남짓한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냄새, 벌레, 녹물, 습기 등을 고루 갖춘... 그다지 좋은 숙소는 아니다. 딸 입장에선 엄마 나이도 있고... 이왕 사는 거 좀 더 괜찮은 곳에서 지내면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엄마는 이 정도면 다른 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보다는 괜찮은 환경이라며 또 잘 적응하고 계셨다.
엄마는 한국에서도 무언가 공부하면 항상 벽에다 중요한 것이나 암기할 것을 붙여 놓곤 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룸 책상 옆 벽 한편이 수많은 종이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대부분은 생존 태국어였다. 하지만 그 수많은 종이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가족사진이었다.
서울의 내 자취방 현관문에도 가족사진이 가장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현관문을 열 때마다 문득문득 마주치는 웃고 있는 가족들로부터 매일 잔잔한 지지를 받으며 생활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독립하며 어른인 척 살고 있지만, 힘들고 지칠 때 엄마 아빠가 보고 싶고 기대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데, 그걸 사진으로나마 풀며 사는 것이다.
엄마가 이 낯선 곳에서 힘들고 외로워도 힘을 낼 수 있는 것도 저 사진, 우리 가족들의 웃고 있는 저 모습 때문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엄마야 말로 우리 가족이 정말 보고 싶었겠구나, 우리 엄마가 이렇게 고생하는 동안 내가 전화도 잘 못했었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며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고 말았다.
'위험 위험!'
다행히 엄마는 부엌에서 과일을 씻고 있어서 나의 울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나는 재빨리 사진 옆에 붙어있던 태국어를 유난을 떨며 큰 소리로 읽었다. (엄마가 한국 발음을 다 써놓았다.)
“능 썽 산 씨 하 혹 쨋 뺏 까오 십! 우와? 한국어랑 되게 비슷하네! “
내가 갑자기 태국어 공부를 시작하자 엄마는 나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는지, 내 옆으로 와 숫자를 하나하나 다시 말해주며 발음을 연습시켰다. 아니 나 눈물 멈추려고 한 건데... 의도치 않게 태국어 숫자를 마스터해 버렸다.
눈물 참기 스킬 (4)
- 관련 없는 무언가를 크게 말하며 울컥하던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뿜어낸다.
눈물 참기 스킬 (5)
- 아무것도 아닌 걸로 유난을 떨며 기분을 전환시킨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 짐을 챙겨 그린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는 맏딸답게 엄마에게 이것저것 잔소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마, 건강이 제일 중요한 거 알지? 꼭 건강 챙기면서 일하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조금은 그냥 포기하고! 마음 편하게 살아야 해! 알겠지? ”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엄마의 잔소리였다.
“에휴 엄마는 걱정 마세요~ 너 치앙마이 가면 논문이나 열심히 써! 논문 쓴다고 여기 왔는데 그래도 대충 방향은 잡고 한국 가야지~! 친구랑 놀기만 하다 하나도 못 쓰고 갈라!”
우리는 서로 잔소리를 하며 택시에서 내렸다. 나는 두 팔을 한껏 벌려 엄마를 꼬옥 안았다. 푸근한 엄마의 살이 너무 좋았다. 근데 우리 엄마 카는 매번 줄어드는 것 같네...
하... 또 세 번째 울컥이 찾아와 버렸다. 안 울려고 했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거람ㅜㅜ나는 애써 눈물을 참아내고 엄마를 봤는데 엄마도 울먹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친 순간 이젠 더 이상 눈물을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 나는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찔끔 흘려버렸다. 엄마와 나는 서로 재빨리 눈물을 닦고는 안 운 척 시치미를 뗐다.
"엄마 2학기도 화이팅!!!"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엄마에게 화이팅을 외쳤다.
"딸도 화이팅! 12월에 보자, 사랑해" 우리는 서로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잘 살 테니 걱정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은 짧고 굵은 이별이 끝났다.
눈물 참기 스킬 (6)
-그냥 운다. 뭐 방법이 없다. 그래도 찔끔에서 멈출 수 있음 다행이다.
그렇게 나는 4시간 30분을 달려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다 되어있었다.
후... 피곤하다. 옆 방에 묵는 중국인들은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 나는 TV를 켜서 소소한 복수를 했다. 씨알도 안 먹혔지만...ㅎ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제 삼십 분 후면 나의 고등학교 친구 N이 공항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엄마 미안, 논문은 좀 더 나중에 써야 할 것 같아!ㅎ
[오늘 추천 장소]
(1) Shabu House 99 - 치앙마이
-밤늦게 도착한 친구 N과 호텔 직원의 추천을 받아 먹으러 간 곳. 새벽 2시까지 하는 샤브샤브 무한리필 집. 가격은 인당 99밧! 음료 및 물은 따로 계산됨. 가성비 끝판왕이어서 그런지 사람도 많다.
https://maps.app.goo.gl/mX84PNPs9gQCgC7fA?g_s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