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비 Sep 28. 2023

유대인과의 우연한 동행

[태국 북부여행] Day 17 - 빠이

 나는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기면 질문과 말이 많아지는 편인데, 오늘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빠이에서 만난 두 남자와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구릿빛 피부에 곱슬머리가 귀여운 이스라엘 친구와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Episode No.1으로, 190이 넘는 키에 머리를 민 듬직한 남아공 친구와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Episode No.2(다음 글)로 가주길 바란다.(하지만 둘 다 절대 로맨틱하진 않다. 멜로를 기대했다면 미리 죄송하다...^^)



빠이에서 만난 두 남자 - Episode No.1

유대인과의 우연한 동행


#이스라엘과 태국의 징병제도

#유대인 교육

#유대인이 본 한국인특

#whatsapp도 안 쓰는 나라


 워킹스트리트의 전구가 불을 밝히기 전의 빠이는 사실상 정말 할 것이 없다. 그야말로 유유자적의 끝판왕이랄까?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투어로 혹은 오토바이로 빠이 외곽으로 놀러 나간다. 나와 친구 또한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일몰을 보고 돌아오는 one day tour를 예약했다.


 투어에 사람이 꽤나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차에 타보니 조수석에 앉아있는 갈색 곱슬머리 남자애가 다였다. 곱슬머리 남자애는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이사프,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나는 사실 태어나서 이스라엘 사람을 처음 만나봤다. 그들이 쓰는 히브리어를 들어본 것도 교회 목사님이 ”샬롬! 주님의 평안이 깃들길 바랍니다~“할 때의 “샬롬!"뿐이었다. 이사프와 우리는 정말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고 서로가 서로의 호기심 대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수다는 투어 내내 끊이질 않았다. 수많은 수다 중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스라엘과 태국의 징병제도

 투어의 첫 번째 코스는 싸이 응암 온천이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며 우리는 각 나라의 징병제도에 대해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사프는 3년 동안 복역 후 올해 초 전역했는데, 보통 이스라엘 남자는 2년 반을 의무적으로 복역한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모든 여자들도 2년씩 의무적으로 복역한다는 점이다. 이사프는 한국의 징병제를 듣더니 "한국 남자들은 불만이 없어?"라고 물었다. 


 이사프의 말을 들으니 군대를 안 간 여자로서 모든 국군장병들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어릴 땐 군대 가는 친구들을 보며 '어휴 고생하겠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한없이 고마운 것 같다. 솔직히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국민으로서 그 짐을 묵묵히 지어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한국 가면 아빠랑 오빠한테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다.


 이사프는 군대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둘이서 각각 40kg가 넘는 배낭을 메고 아이슬란드를 찐으로 걸어서 여행했다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사진 속 둘은 과장을 좀 더 보태서 내 키만 한 배낭을 메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사프의 이야기를 들으며 "amazing! awesome! that's crazy!"만 수십 번 말했던 것 같다. 고생을 꽤나 했을 텐데, 그런 여행도 즐기며 다닌 그 커플이 너무 멋져 보였다. 


 운전을 하던 태국 가이드도 태국의 징병제도를 이야기해 줬다. 한 때 한국에서 태국의 징병제도가 큰 이슈가 됐어서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또 다른 의미로 Amazing 했다. 태국은 매년 군인이 몇 명이 필요한지 발표하는데, 그만큼의 빨간 표를 검은 표와 섞어 뽑기 통을 만든다. 그리고 징병 대상 남자들이 차례로 나와 오직 자신의 손가락에 운을 맡긴 채 뽑기로 복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Haha wait what....??"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 나에게 단 한 번의 뽑기로 앞으로 내 인생의 2년을 정한다고 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뽑기는 생중계가 될 만큼 태국에서는 큰 이벤트인 듯했다. 빨간 표를 뽑은 청년들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기도 하고 검은 표를 뽑은 청년들은 환호를 지른다고 한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져버릴 거 같은 상황이다.


 이사프는 만약 누군가는 가야 하고 누군가는 안 가도 된다면, 뽑기만큼 공평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어쩌면 정말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겠네 싶었다. 특이한 건 대학 졸업 후에 모병제로 가면 6개월만 복역한다는 것과 성전환수술을 하면 군대를 안 가고, 성전환수술을 안 한 트랜스젠더는 뽑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싸이 응암 온천 - 미지근한 온천이라 오랜 시간을 보내기 좋다. 온천에서 여러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유대인 교육

 교육계 종사자인 나는 이사프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다. 한국에서 많이 연구되고 널리 쓰이는 유대인의 토론 공부법인 '하브루타'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정말 정직한 발음으로 이사프에게 "Do you know 하 - 브 - 루 - 타?"라고 물었다. 내 발음을 못 알아들은 이사프에게 나는 한참이나 하브루타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야 했다. 어느 순간 이사프가 웃으며 책상을 쳤다! "Ah! 흐아브룻따!" Dang... 아니 내 발음이랑 저거랑 그렇게 달랐남...ㅎㅎ


 이사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브루타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수학습방식뿐 아니라 그냥 그들의 문화인 듯했다. 유대인들은 학교 밖에서 친구들끼리 놀 때도, 가족들끼리 저녁을 먹을 때도 항상 깊이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생각이 깊을 수밖에 없겠다! 말을 잘할 수밖에 없겠다! 성공할 수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들과, 가족들과 밥 먹을 때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ㅎ.ㅎ)

 

 이사프에게 하브루타 방식이 한국 교육계에서 정말 큰 유행이었고 지금도 너무나 유명해!라고 하니 이사프는 신기한 듯이 "What..? Why...?"라고 물었다. "허허... 한국은 일상에서 토론하는 것이 그렇게 흔하지 않아." 이사프 입장에서는 당연한 문화가 먼 외국에서는 연구까지 되고 학원까지 있으니 진짜 신기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의 토론이란, 내가 옳고 남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치인들의 토론을 볼 때면 저것이 토론인지 싸움인지 헛갈릴 때가 많다. 정말 드물게 감정적이지 않은 토론자를 발견하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문제 등을 밥상머리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하는 분위기이다. 뭐든지 가볍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는 것이 '예의'가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도 긍정적인 토론문화가 자리 잡아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볍게 어떤 문제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이, 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감정이 상하지 않는 이성적인 사고, 서로의 의견을 보충하고 채워 더 좋은 답을 찾는 과정, 궁금한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고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 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것이 서로 가능한 친구가 있다면 결혼해도 되지 않을까...?(갑자기 결혼이야기로 빠지는 결혼 적령기 1인)

밤부 녹차밭 - 너무 더워서 다 돌진 못하고 뷰 좋은 카페에서 쉬었다.

#유대인이 본 한국인특

 투어가 끝난 후 우리는 이사프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갈비탕 st 맛집이었다. 네이버 블로그 맛집이어서 그런지 들어가니 한국인들이 꽤나 있었다. 역시 블로거들의 힘이란!! 우리는 한국인들이 시킨 메뉴를 쓱 훑어보고 같은 것을 주문했다.


 이사프는 한국인들은 서로를 봐도 아는 척을 안 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자신은 같은 이스라엘 사람을 보면 그냥 다가가서 말을 거는데 한국인들은 서로를 봐도 딱히 아는 척을 안 하는 것 신기하단다. 그러면서 혹시 그 이유가 서로에게 너무 예의를 차려서 인지 물었다. 이게 예의 차리는 것으로 보이다니...?!


 그러고 보니, 나도 빠이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을 보았지만 실제로 인사를 하거나 다가가서 말을 건 적은 없었다. 한국어가 들려서 그곳을 쳐다보고 싶지만 괜히 쳐다보면 상대가 뭐지? 싶어 할까 봐 의식적으로 좀 피한 것도 있었다. 한국인 중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팔 걷고 나설 준비는 돼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달까...? 이사프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괜한 예의를 차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나는 외국인들에게는 스스럼없이 너스레를 떠는 편이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으며 가볍게 몇 마디를 주고받는 것도 잘한다. 근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유독 한국인한테만 예의를 차리는지 한국인한테는 그게 어렵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란 사람들한테는 서로 그런 것이 어려운 걸까? 오늘부터라도 한국인을 보면 웃어볼까...?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빠이 한국인 맛집 - 제임스 치킨라이스 앤 누들

#whatsapp도 안 쓰는 나라

 독자 여러분, 혹시 Whatsapp을 아는가? 모른다면 한국인이 맞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 애플리케이션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Whatsapp이다. 이사프와 작별인사를 할 때, 이사프가 Whatsapp 아이디를 물었다. "응...? What's that?" 나는 이사프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똑히 봤다. "What...? you don't use Whatsapp? How do you communicate?!!" 그는 충격을 받았는지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ㅋㅋㅋㅋ왜 이렇게 충격을 받은 거지? 싶었다. "We have Kakaotalk." 나는 자랑스럽게 카카오톡을 소개해줬다. 그는 정말 의아하다는 식으로 우리를 쳐다봤고, 우리는 뭐가 잘못됐냐?라는 식으로 쳐다봤다. 결국 우리는 인스타 아이디를 공유했다.


 이사프의 반응을 보자 일본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올 때마다 구시렁대던 게 생각났다. "아니 한국은 왜 구글맵이 안 돼? 불편해!!!" 친구가 그럴 때마다 나는 "야 한국에 왔으면 당연히 네이버지도지~"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핸드폰 인증 때문에도 자주 열받아했는데, 얼마 전 한국에 왔을 때는 인터넷면세점조차 이용하지 못해 화나했었다. "아니 외국사는 한국인들은 어쩌라고!!!!" 그녀의 외침이 참 무거웠다. 애플 페이도 겨우 들여온 한국인지라... 해외 사는 한국인들한테는 가끔 대한민국이 대한인민공화국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 글로벌 시대를 주도하는 대한민국!이라고 말하지만 흥선대원군 뺨치는 쇄국정책이 여기저기 만연하는 대한민국이다. 뭐, 나는 편해서 할 말은 없다. 자신이 글로벌해지고 싶으면 알아서 적당히 노력해야 하는 곳, 외국인들한테는 다소 불편한 곳일 뿐이다. (하지만 이제 애플페이로 교통카드 좀 쓰게 해 주면 안 될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

빠이 캐년 - 날씨가 흐려서 일몰은 제대로 못 봤지만 그 조차도 너무 아름다웠던 곳이다.



[오늘의 리뷰]


1)빠이 투어

 빠이 워킹스트리트를 걷다 보면 다양항 투어 상품을 볼 수 있다. 가격과 상품은 비교해 보니 거기서 거기여서 딱히 달라질 것은 없지만 어느 곳은 점심값을 따로 받기도 하고 어느 곳은 포함이니 비교해 보시길! 내가 했던 투어는 900밧에 과일과 식사 포함이었다.

 사실 우리는 아침에 온천하는 것과 빠이 캐년에서 일몰 보는 것 두 개만 하고 싶었는데 두 개만 하는 상품이 없어서 그냥 900밧 내고 다 봤다. 오토바이만 빌릴 수 있었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을 것 같다. 그래도 투어를 통해 좋은 인연을 만나 후회는 없다. 


2) 제임스 치킨라이스 앤 누들 - 한국인 맛집

https://maps.app.goo.gl/MrxYEwnHBfLXePEaA?g_st=ic

  갈비탕 느낌이라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곳. 사람이 많으면 오래 기다린다고 하지만 나는 늦게 가서인지 웨이팅은 없었다. 나는 돼지 등뼈 국수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양도 푸짐하고 깔끔한 곳!

이전 16화 고생 끝에 낙을 찾은 빠이(Pa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