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묘농접, 작호도, 화조화
황묘농접(黃猫弄蝶)
아티스트 김홍도(金弘道)
국적 조선
출생-사망 1745년~미상
종류 한국화
기법 지본채색
크기 30.1 x 46.1 cm
소장처 간송미술관
황묘농접(黃猫弄蝶: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
대지가 연녹색풀로 가득 차고, 바위 밑에는 패랭이꽃이 활짝 피어났다.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계절, 하늘과 땅이 모두 햇빛에 물들어 노란 기운이 감돈다. 화창한 전원의 봄날, 긴 꼬리를 가진 검푸른 제비나비가 꽃을 보고 날아들었다. 봄빛을 닮은 주황빛 아기 고양이가 고개를 돌려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여차하면 발을 뻗어 잡아보려는 심산인데, 이를 알아챈 나비는 딱 도망가기 좋을 만큼의 거리를 두며 날고 있다. 그 모양새가 마치 고양이를 약 올리는 것 같아, 그림 제목도 “검은 나비가 고양이를 놀리다.”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늦봄의 평화로운 풀밭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을 단원 김홍도가 화폭에 옮겼다. 단원이 아니라면 이런 순간을 잡아내기도 어렵고, 또 이런 정겹고 풋풋한 정취를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단원의 그림은 단순한 사실묘사를 뛰어넘어 대상들의 상호교감을 극대화시키고, 나아가 그림을 보는 사람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여 동화시키는 매력이 있다.
이 그림은 누군가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듯하다. 그런 내용을 따로 밝혀놓지는 않았지만, 그림의 내용이 그렇다. 예로부터 고양이는 70 노인을 상징하고 나비는 80 노인을 상징한다. 화면 중앙에 있는 패랭이꽃은 꽃말이 청춘이다. 그 옆에 자리한 바위는 불변의 상징이고, 화면 앞쪽에 있는 제비꽃은 구부러진 꽃대의 모양새가 등긁개를 닮아 여의화(如意花)라 부른다.
이런 소재들의 상징성에 주목하여 이 그림을 보면, “일흔 살 여든 살이 되도록 젊음을 변치 말고 장수하시고, 모든 일이 뜻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라고 읽힌다. 환갑을 맞은 분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의미를 가진 그림이다. 내용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그림의 정취와 아름다움이 이토록 빼어나니, 최고의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N지식백과>
평소에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그려보고 싶었다.
작호도 Tiger and Magpie, 鵲虎圖=호작도
정의
호랑이와 까치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 까치호랑이 그림
연원 및 변천
우리말로 ‘까치호랑이 그림’이라고도 한다. 호랑이에 까치가 등장하는 그림은 ‘자모호도(子母虎圖)’와 ‘유호도(乳虎圖)’ 등 중국 원나라와 명나라 때 호랑이 그림에서 연원 된다. 이러한 그림은 임진왜란 무렵 명나라로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명나라 자모호도나 유호도에서는 호랑이가 밍크담요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세밀하게 묘사되고 소나무나 까치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명나라식 호랑이 그림은 17세기부터 점차 조선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는데, 입체적인 표현이 평면화되고 사실적인 배경이 표현주의적인 경향으로 바뀌는 변화를 보였다. 이정(李楨)의 「호도」(일본 고려미술관 소장)는 까치가 없이 호랑이만 등장한 경우로, 호랑이와 소나무 배경은 평면화되면서 서예의 필치처럼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8세기에 다시 사실적인 화풍이 득세하게 되면서, 명나라 그림처럼 입체적인 표현이 등장하였으나 배경은 보다 간략화되고 표현주의적인 화풍을 보였다.
19세기에는 민화에서 즐겨 그려지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까치와 호랑이의 관계가 단순히 주인공과 배경의 관계를 넘어서 흥미로운 설화로 각색되었다. 호랑이는 탐관오리와 같이 힘과 권력 있는 사람을 상징하고, 까치는 민초를 대표하는데, 호랑이는 바보스럽게 표현되고 까치는 당당하게 묘사되면서 호랑이가 까치에게 쩔쩔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신분간의 갈등문제를 우화적이고 풍자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원래 호랑이는 액막이이고 까치는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길상의 상징인데, 민화 까치호랑이에서는 이러한 상징과 더불어 신분간의 문제를 덧붙임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화조화, 花鳥圖
정의
꽃과 새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
개설
넓은 의미로는 조류만이 아닌 네 발 달린 짐승 등 동물 전체를 포함해 일컫는다. 한편 영모(翎毛)란 새깃[翎]과 짐승털[毛]의 의미로, 날짐승과 길짐승을 가리킨다.
그러나 북송대(北宋代)까지만 해도 영모화는 새와 동물을 포괄하는 그림의 개념으로 쓰인 경우는 드물었으며, 오히려 화조문(花鳥門)의 한 지류(支流)로 간주된 듯 주로 새 그림을 지칭했다. 청(淸) 때 간행된 『개자원화 전(芥子園畵傳)』 제11권 「영모화훼보(翎毛花卉譜)」에서도 길짐승은 제외되고 새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영모의 뜻이 원래 글자 뜻대로 해석되어 오늘날에는 새와 짐승의 그림으로 이해되고 있다. 새와 짐승은 인간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서식하는 동반자로서 아름다운 외모와 듣기 좋은 울음소리 등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림의 주된 소재의 한 분야가 되었다.
이에 따라 동양회화권에서 산수(山水)와 인물(人物)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여 왔다. 우리나라의 화조화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화조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고려시대 때 본격적으로 대두된 이후, 조선시대에 널리 성행하게 되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민화에서 새와 꽃을 많이 그리는 이유는 길상의 의미를 담아 행운과 복이 깃들게 하기 위함이다.
작년 12월부터 주민센터에서 민화를 배우기 시작한 민초생(민화초년생)의 삶은 행복과 힐링, 그 잡채~
여행으로 인해 한 달을 쉬어야한다는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즐겁게 배우며 그리는 중이다.
배움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