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말 게으른 걸까?

자꾸 미루는 마음 안에 숨어 있는 진짜 이유

by 이말리



매일 아침, 우리는 "오늘은 달라질 거야"라고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미룰까?
게으름이라는 익숙한 그 이름 뒤에는, 나도 몰랐던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아침이 밝으면, 나는 오늘은 달라질 거라 다짐한다. 휴대폰 알람을 10분 간격으로 맞춰놓고, 그 알람이 여러 번 울리는 동안 침대 위에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일어난다.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손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지난주 작성해서 전달해야 하는 문서들을 놓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컴퓨터 화면이 켜져 있고, 필요한 자료들도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맴돌기만 할 뿐, 첫 줄을 쓰지 못했다. "이 일만 끝나고 나서 해야지", "조금만 더 준비가 필요해." 핑계를 만들고, 미루고, 결국엔 스스로를 탓한다.


그렇게 내 안엔 '게으른 나'라는 익숙한 자화상이 자리 잡아간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또 미뤘구나" 하고 한숨을 쉬는 것이, 어느새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사실, 내가 정말 게으르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미루는 순간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미룬다.


오늘도 그랬다. 중요한 스토리 작업을 해야 했는데, 나는 대신 정원 정리를 했다. 나무를 전지 하고, 시든 꽃들을 잘라내고, 심지어 새로 산 전동 트리머를 충전해서 시험사용을 해보기도 했다. 몸은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정작 해야 할 일은 손도 대지 않았다. 내가 정말 게으른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때 내 안에서 알아차림이 있었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미룸 속에는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작은 회피가 숨어 있다. 마치 아픈 곳을 계속 피해 다니는 것처럼, 나는 뭔가를 피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마음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를 막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내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두렵고, 누군가에게 거절당할까 봐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 스토리 작업을 미뤘던 진짜 이유는 게으름이 아니었다. "내 아이디어가 별로면 어떡하지?", "다들 나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혹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목소리들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 실수가 들통날까 봐, 변화의 문턱 앞에선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고 말하는 건, 사실 "실패할까 봐 무서워"라는 뜻이었다.


게으름 뒤에 숨어 있던 건, 사실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실망하지 않으려는, 그 간절한 마음이 나를 제자리에 머물게 하고 있었다.


실수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이다.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때로는 '게으름'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달리해 나타나기도 한다.


게으름의 근원에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니,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동안 나는 표면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미루고, 회피하고, 자책하는 패턴만 반복하면서 정작 그 밑에서 무엇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제는 그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언제부터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천천히 살펴보고 싶었다.


두려움은 내 적이 아니었다. 다만 과보호하는 부모처럼, 나를 너무 안전한 곳에만 두려고 했던 것이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그 간절한 마음이 오히려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여보고 싶다.


심리학자들은 완벽주의가 미루기를 불러온다고 말한다.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다는 부담이 커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첫 발을 내딛지 못한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수용이, 변화의 첫걸음이 될 때가 많다.


게으름이라는 이름 아래, 내 마음은 나를 보호하려는 두려움과 함께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실패해도 다시 걸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내 안에 심어주고 싶다.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망설였지만, 그 망설임마저 내 일부로 품으며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뎌봤다. 완벽한 계획 대신 '그냥 하기', '5분만 해보기', '하면서 수정하기'를 선택했다.


완벽한 글 대신 '서툰 첫 문장'을 써봤다. 두려움이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고 속삭일 때, "괜찮아, 일단 해"라고 대답해 봤다.


내일도 여전히 망설이겠지만, 그 망설임마저 내 일부로 품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게으름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탓하는 대신,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이해해 보기로 한다.










게으름이라는 이름 뒤에는 두려움과 애쓰는 나의 마음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게으름은 나의 적이 아니었다.

그저 상처받기 싫어하는 마음이 다른 이름으로 나타난 것뿐이었다.

이제는 그 마음을 탓하지 않고, 함께 작은 걸음을 내디뎌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