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요리, 돌봄의 정치학
1. 부엌은 사적인가, 정치적인가?
오래도록 부엌은 여성의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사적 영역에서 행해지는 요리와 돌봄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몫’으로 간주되며,
이로 인해 음식은 종종 비가시적 노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돌봄과 요리는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사회가 성별을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역할을 당연시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일상적인 정치적 장면이다.
2. 요리는 사랑일까, 의무일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요리해 주는 것”이라는 말은 따뜻해 보이지만,
그 말 속에는 많은 여성들의 무의식적 자기 희생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명절 음식 준비, 가족 식사 담당, 아이 반찬 챙기기 같은 일들은
‘엄마니까’, ‘아내니까’라는 논리로 정당화된다.
요리는 종종 감정노동과 희생을 요구받는 성역할 수행의 일환이 된다.
3. ‘잘 먹이는 사람’이 되는 압박
현대에는 외식, 배달, 가정 간편식이 늘었지만,
여성들이 ‘건강한 식단’, ‘영양 균형’, ‘자녀의 미각 교육’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형의 기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잘 먹이는 사람”이 되기 위한 압박은, 여성의 돌봄 노동을 여전히 정상화하고
개인의 욕구보다 가족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문화로 이어진다.
4. 부엌의 권력 구조를 묻다
‘부엌을 지킨다’는 말은 때로는 보호의 의미로, 때로는 억압의 은유로 쓰인다.
음식 콘텐츠의 대중화는 여성 셰프나 요리 인플루언서의 존재를 확대했지만,
정작 고급 요리의 세계, 미슐랭 스타 주방의 지배자는 여전히 남성이다.
‘가정 요리=여성’, ‘프로 요리=남성’이라는 위계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성별 권력의 문화적 코드다.
5. 음식, 젠더, 돌봄의 재구성
젠더 관점에서 본 섭생은 단지 누가 요리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돌보고, 누가 먹으며, 누가 평가받는가의 문제다.
진정한 변화는 부엌을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부엌이라는 공간 자체를 재정의하고,
요리와 돌봄을 ‘누구의 몫이 아니라 모두의 몫’으로 전환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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