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으로 요리하고 철학적으로 먹기 - 혜산 스님 1편
"음식으로 다룰 수 없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음식은 우리의 건강과 병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음식과 수행 또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음식과 건강, 음식과 수행의 상관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수행자이다. 수행의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고 체득해 온 이들의 음식 문화에서 식생활의 지혜를 배워 봄이 어떨까.
단식은 새로운 몸을 만드는 '공公'의 과정
“가령, 자네와 내가 바둑을 놓는다 말이오. 그런데 계속 판이 꼬여 승부가 나질 않으면 ‘이건 무효요’ 하고 판을 섞어버리지요. 지금까지 했던 것을 ‘공空’으로 돌리고 새로 판을 두는 거예요. 이를테면 ‘공’ 사상이죠. 생도 마찬가지예요.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아무리 덧칠해 본들 소용없어요. 지금까지 지어온 악업을 백지로 만들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반야般若의 지혜를 터득해야 해요. 먼저 자신의 고정관념을 타파시키고, 새로운 원을 세워 다시 시작하면 자신의 업과 운명도 바꿀 수 있어요.”
반야심경의 핵심이 공임을 강조하는 혜산 스님은 수행자들의 식습관과 음식에서도 반야의 지혜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가령 ‘단식’만 해도 그렇다.
“건강과 모든 병은 근본적으로 음식으로 다스릴 수 있어요. 그 진리로 비춰보면 인간은 때론 날짐승만도 못한 존재예요. 꿩만 해도 몸이 아프거나 먹지 말아야 할걸 먹었을 땐 한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병을 다스리죠. 수행자들도 단식을 많이 하는데, 단식은 기존에 섭생한 것들을 비워내고 새로운 체질로 바꾸는 작업과 같아요. 즉 ‘공’ 사상과도 접목되죠.”
혜산 스님이 출가할 당시만 해도 스님들이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일뿐더러 심지어는 수치로 여기기도 했단다. 음식을 잘못 섭취하고 건강에 소홀해서 병이 난 것은 수행을 게을리했거나 잘못한 것으로도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이 나면 내놓고 얘기하질 못했어요. 옛 스님들은 병이 나면 보통 음식 조절로 관리했는데, 은사스님께서는 건강이나 체질 개선을 위해 단식을 수도 없이 하셨죠. 한 번 단식에 들어갈 때마다 보통 20일을 하셨어요. 단식은 체질을 바꾸는 수행 과정이기도 해요. 체질에 이상이 있다면 그건 전생에 받은 몸으로 인해 건강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따라서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 단식을 통해 새로운 몸을 만드는 거죠. 단식은 시작하기는 어려워도 3~4일 정도 지나면 정신이 그렇게 맑고 깊어질 수 없어요.”
단식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과 여건도 중요하다. 사실 대중 속에서 단식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무엇보다 음식의 유혹을 끊기 어렵다. 그러다 어느 정도 공복 상태가 유지되면 아무리 깨끗한 음식도 그 냄새가 그렇게 역해질 수 없다. 음식을 늘 접할 때야 버릇이 된 입맛과 기호로 음식이 맛있다고 여기지만, 단식을 일정기간 하게 되면 음식의 냄새조차 싫어지게 된다.
“그래서 단식 중에는 생각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염식’을 하기도 해요. 은사스님께선 한 번씩 단식을 하는 것이 좋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처음에는 제겐 무리하고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강한 체질도 못됐었고 사경을 헤맨 적도 몇 번 있었거든요. 그런데 태안사에 있을 때 감기가 자주 걸려 한 번 굶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시도해 봤는데 참 좋더라고요. 무엇보다 정신이 맑아져서 좋고, 몸도 가벼워지고 발걸음이나 마음도 경쾌해지더군요.”
불가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단식이나 음식 조절을 통해 수행과 건강을 관리해 왔다. 그 오랜 문화는 어찌 보면 현대의학보다 훨씬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이 부족한 시절에 수행자들은 그 상황에 맞게 자연 속에서 먹을거리를 찾고 개발해 왔다. 또한 몸이나 정신이 고요한 상태에서 음식이 건강과 수행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몸소 체험해 왔다. 그렇게 규명된 것을 토대로 계율이 만들어졌고 불가의 식생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네들의 식생활은 또 우리네 밥상에도 알게 모르게 스며들었으니, 수행자들은 건강한 식문화의 과학자이자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