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동강할미꽃과 굽이굽이 흘러야 할 동강
보라색 암술과 꽃받침의 동강할미꽃은 석회암 절벽에 매달려 피는 꽃으로 강원도 정선군 일대에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특산식물이면 국가에서 보호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아니다. 특히 영월군의 동강 주변이 생태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있어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동강할미꽃보존회는 귤암리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동강할미꽃 축제도 하여, 훼손을 막을 수 있었다 한다. 역시 사람들이 지켜보는 눈이 제일 무섭다. 좁은 강길을 가다가,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모습에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동강은 평화롭다.
백룡동굴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백운산을 오른다. 벼랑에 올라서면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동강과 산이 서로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는 산경표(山經表)의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산 없이 시작되는 강은 없고, 강을 품지 않은 산이 없다는 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관이다. 산을 좋아라 하면서도 우리 산하의 특징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음을 실감한다. 청노루귀는 만발인데, 동강할미꽃은 작년보다 적다. 그래도 석회암 절벽에 핀 꽃을 볼 수 있었다. 먼 길을 찾아와 밧줄을 잡으며 절벽을 오른 보람이 있어 다행이다.
절벽 중 한 곳에 터를 잡고 도시락을 펼치며, 뒷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밥 먹을 곳을 찾으며 뒤돌아 섰을 때 동강할미꽃을 봤기에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바로 후회했다. 본인 사진을 위해 동강할미꽃의 묵은 잎을 걷어버리는 행동에 놀라 소리쳤다. 흙이 부족한 벼랑에서 묵은 잎을 덮고 피는 꽃인데 그걸 치워버리면 제대로 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산을 오르며 만발한 생강나무꽃도 길가에 떨어진 것이 보였다. 향기를 맡으려고 꽃을 뜯은 것이다. 꽃을 잡는 손길만 봐도 화가 나서 뜯지 말라고 뭐라 할 판이다. 유별나다는 시선이 느껴져서 불편하다. 혼자 잘난 척한다고 할 것 같아서.
그러나 유별난 것이 아니다. 이 꽃과 강을 잃을 뻔한 과거가 있다. 말없는 꽃은 계속 피어야 하고, 산을 휘감아 도는 강은 흘러야 한다. 우리는 생태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익혀야 한다. 이 꽃을 통해 알게 된 과거로 시간을 돌려보자.
강둑이 터지고 산사태가 나서 밤사이에 대피하지 못한 희생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 방송 기자는 터진 둑을 등지고, 앞다퉈 마이크를 잡고 어느 정도 비가 왔는지 어떤 피해가 있는지를 조목조목 알린다. 신문에는 지금까지의 수해 중에서 어느 정도인지를 비교하며 심각성을 알린다. 그러다 추가적인 피해가 없으면,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인지, 막을 수 있었던 인재인지에 대한 목소리가 시끄럽다. 피해복구를 위해 군인과 자원봉사자의 봉사활동이 이어진다. 사나운 민심을 다독이고자 정치인들이 나서, 정부의 지원을 약속하며 피해자를 다독이는 방송이 나온다.
그럴 때쯤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는지를 토목 건설 관련 전문가들이 나와서 설명한다. 백 년 만의 기록적인 비가 쏟아졌으며,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노후된 댐만으로는 부족하니, 추가로 다목적 댐 건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같은 목소리를 낸다. 피해가 발생했으니, 적극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무능한 정부라는 공격을 피할 수 없다. 해당 정부부서에서는 건설 예정지를 발표하며 밀어붙인다. 건설예정지에는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과실나무를 심는다. 나라에서 이미 정한 일이라 피할 수 없으니, 보상이라도 많이 받자는 말에 귀가 솔깃한다. 1990년 한강 대홍수의 대책으로 영월군에 다목적댐 건설계획을 발표할 때의 상황이다.
이 계획은 2000년 건설계획이 취소되었다. 영월댐 즉 동강댐은 찬반 토론에 의해 결론이 내려져 건설계획이 폐지된 것이 아니다. 정부의 주관부서에서 전문가들의 연구로 취소된 것도 아니다.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취소된 것이다. 그래서 언제라도 다시 지시할 수 있다. 안 되는 일은 누가 찬성해도 안 되어야 하고, 되는 일은 어떤 반대에도 꺾이지 않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그런 원칙이 없다. 때가 되면 아무리 늦게까지 눈이 내려도 꽃이 피는 봄이 오듯이, 지겨운 무더위도 가을바람 앞에서는 꼬리를 감춘다. 이처럼 자연의 원리를 우리 삶에 적용하는 날이 오기를 산을 내려오며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