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이 산꽃이 폈을까?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닐까를 걱정하며, 국립공원사무실로 전화해 본다. 3일 전에는 아직 피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해가 길어졌으니 폈을 것이라 예상하며 걸음을 옮긴다. 소백산 희방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보며, 덩달아 기대하고 깔딱 고개를 넘었다. 부러진 소나무 가지들은 처참하게 산길에 흩어져 있다. 눈이 많이 와서 부러진 것인지, 바람이 많이 불어서 꺾인 것인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저 나무들이 견딘 시간까지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다.
군데군데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있다. 낮기온이 올라간다고 했는데, 여기는 아직 바람이 춥다. 이렇게 4월에도 눈이 남아 있는 곳이 소백산이다. 낮에는 햇빛을 느낄 수 있지만, 잔설이 남아 냉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이 꽃은 좋아한다고 한다. 1935년에는 지리산의 모데기마을이 이곳과 같았나 보다. 그래서 이 꽃은 마을에도 피었나 보다. 그러나 이젠 마을에서는 사라지고, 해발 1000m가 다 되는 이곳에 피었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살아남은 모데미풀’에서, 자신을 지키기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과거에는 널리 자랐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지금은 일부 특정한 환경에서만 살아남은 식물들이 선택한 특수한 땅을 ‘피난처’라고 한다고 했다. 그 피난처가 소백산인 것이다. 풍기에 실향민들이 모여 살듯이 모데미는 이름처럼 모여서 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병란을 피하는 데는 태백산과 소백산이 제일 좋은 지역이라 했듯이 말이다.
피난처에 피었다면 여리고 나약하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데미풀꽃은 너도바람꽃처럼 노란 꿀샘을 가지고 있지만,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잎에 톱니무늬가 있어 강한 인상이다. 그리고 그 무늬는 꽃싸개잎(포엽)의 톱니무늬와 어울리면서 강한 가시처럼 보인다. 결코 약한 모습이 아니다. 사람으로 치면 덧니가 튀어나온 것 같다. 요즘은 덧니를 드러내며 웃는 미소를 보기 어렵다. 덧니는 입술 속에 숨겨야 하는 결점이다. 불규칙적으로 모가 났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개성이고 자유분방함이다. 결점을 숨기며 빼어나려는 욕망에서 제일 먼저 죽이는 것이 개성이다. 돌이켜보면 그 개성이 자신의 자유로운 생명력의 뿌리였음을 우리는 놓친다. 결점처럼 보이는 불규칙하고 정리되지 못한 특성이 나의 정체성이었음을 깨달으며 이 꽃에 눈 맞춘다.
늙으면 다시 젊어질 수 없는 사람은 봄마다 새로운 꽃을 피우는 식물을 보며 그들의 생명력에 열광한다. 잎을 모두 떨구며 겨울을 견딘 가지에서 꽃망울이 터지고, 안 보이는 뿌리 이외에 모두 사라졌지만 꽃대를 밀어 올려 피는 산꽃의 모습은 반전 그 자체다. 평소 꽃을 찾지 않던 사람도 벚꽃이 만발하는 시기에는 꽃을 찾는다. 환한 조명을 켜놓은 것 같은 벚꽃을 배경으로 꽃비를 맞으며 꽃길을 걷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로소 확실한 봄을 느낀다. 산꽃이나 평지에 핀 꽃이나, 나무꽃이나 풀꽃이나 모두 꽃이다. 감상은 다양한 방향으로 이어질 때 풍부해진다. 나는 산꽃에서 아름다움을 살피며, 세상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