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기세에 눌려 달아나지 못하고 범의 노예가 된 창귀는 다른 사람을 대신 앞세워야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슬픈 노래를 부르며 허공을 쳐다보다가 산으로 끌려가다시피 나서거나, 주변에서 아무리 못 가게 막아도 기어코 산에 올라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것은 창귀에 홀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죽은 영혼은 또 다른 창귀가 되어, 다른 희생양을 연결하는 사다리 놓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단다. 산에 기대어 힘겹게 살았지만, 호랑이에게 잡아 먹혀 창귀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지가 대부분인 강원도 태백산의 산사람들은 산의 최고 포식자인 호랑이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다. 몸은 희생되더라도 영혼만은 두려운 대상에게 희생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호식총의 돌무덤에 담겨있다.
태백산 산꽃 산행은 당골광장에서 문수봉으로 올라 천제단을 지나, 용정의 샘물로 갈증을 달랜 후 당골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반재를 지나 계곡이 시작되는 곳에서 만난 호식총 팻말은 발걸음을 잡아 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으로 만든 일반 무덤과 달리,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납작한 돌로 켜켜이 쌓아 올린 돌무덤이다. 태백문화원에서 김강산님이 1988년에 발간한 <호식장>을 읽어 보니, 호랑이에게 희생된 사람의 유골은 화장한 후 돌로 쌓아 올려 무덤을 만들고, 그 꼭대기에 시루를 뒤엎어 덮고 쇠꼬챙이의 가락을 꽂았다고 한다. 영혼이 돌무덤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둬두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세월이 흘러 시루나 가락은 사라지고 돌무덤만 남아있지만, 산사람들의 두려움은 고스란히 담겨있는 무덤이다.
계곡 주변의 언덕배기는 산사람들이 살기 좋은 터였을 것이다. 밭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과 사람의 삶을 이어가는 열쇠는 물이니까. 태백산은 계곡 주변이 꽃밭이다. 이 산꽃과 호랑이한테 잡아먹힌 사람의 돌무덤을 보면, 태백산의 계곡에 사람과 꽃이 어울려 살았을 것이다. 눈 녹아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4월 중순이 되면, 물가를 좋아하는 ‘들바람꽃’을 찾는다. 잎 같은 3개의 포가 돌려나서 무성한 잎처럼 보이는 이 꽃은, 아직 눈이 남아 있고 나무들도 잎을 틔우지 않아서, 이 포엽만 빽빽한 녹색을 자랑한다. 톱니 모양의 잎 같은 포엽 끝에 길게 꽃대를 밀어 올려, 하나의 꽃대에 한 송이씩 핀다. 꽃잎처럼 보이는 흰 꽃받침 5개가 수평으로 펼쳐 피고, 그 위에 많은 암술과 수술이 수평의 꽃받침과 달리 수직으로 튀어올라 있다. 긴 꽃대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사진 찍기가 어려워, 사진기는 넣어두고 흔들리는 들바람꽃을 감상한다.
수평의 흰 꽃받침을 박차고 튀어 오를 것 같은 녹색의 암술과 흰 수술은 자유롭게 흔들린다. 틈만 나면 산꽃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순간에 느끼는 자연의 생명력 때문이다. 사람도움 없이 당당하게 핀 산꽃은 이름이 같아도 같은 모습은 없다. 세월이 흘러 호랑이도 멸종한 산에서 멧돼지가 최고 포식자이듯이, 우리는 여전히 모습이 다른 공포의 굴레에 허덕인다. 이 굴레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궁리하지만, 계산대로 되지 않지 않는다. 겨울 추위도 이겨낸 목숨이었으나, 산나물을 뜯거나, 장에 내다 팔 숯을 만들 나무를 베다가도 호랑이를 만날 위험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태백산에서 굶주림에 지쳐 힘 잃은 멧돼지를 만난 적이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였고, 낮이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공포는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의지로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런 공포를 겪고 나면,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공포가 계속될 것이라는 굴레가 된다. 맞서 싸울 힘도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방법과 지식을 알아도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말이 잔소리가 되어, 쓸모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 때는 마음을 토닥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 들바람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수평의 날개를 달고 수직의 암수술이 튀어 오르는 모습은 내가 짐 진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