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너도바람꽃으로 연다. 화야산에서 앙증맞은 청노루귀꽃을 찾아, 숨죽이고 사진을 찍다가 노란 꽃샘과 6장의 주름진 흰바람개비꽃이 눈에 띄었다. 초반기의 산행에서는 보는 것이 다 신기하여 사진을 찍은 후 3권의 식물도감 책을 내내 돌려보며 이름을 찾았다. 그렇게 이름을 찾아야 그 꽃을 기억할 수 있다. 기억을 해야 또 감상할 수 있으니까.
봄이 온다고 하지만, 회색빛 도시에서는 봄의 생동감을 느끼기 어렵다. 2월 말부터 이 꽃을 찾아 나서면 봄을 느낄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춥고, 잔설이 있는 반양지의 언덕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이 꽃을 만나면, 팍팍한 세상살이를 그래도 피하지 않고 견뎌내고 있음을 위로받는다.
누가 봐도 흰 꽃잎이 꽃잎인데, 꽃받침이란다. 꽃잎이든지 꽃받침인지가 뭐가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꽃잎, 암술, 수술로 구분해 보면 분명 노란 꽃받침 안에 암술, 수술이 오밀조밀 몰려있다. 보는 나에겐 기능보다 외모가 중요하지만, 생명체인 꽃의 입장에는 씨앗이 중요하다. 이른 봄의 씨앗을 품기 위해, 산꽃은 있어야 할 것만 남기고 군더더기는 없앤 모습이다. 삶에서 필요한 것만 남기고 싶다면, 뚜벅뚜벅 걸어서 산꽃에 눈 맞추면 배우게 된다.
봄산꽃은 나무들의 잎이 나기 전에 씨앗을 품기 위해 빨리 피고, 일찍 진다. 흰 꽃받침의 끝부분이 누렇게 생기를 잃어가거나, 빳빳하게 고개를 들었던 줄기가 꺾이기도 했다. 너도바람꽃의 군락은 3월까지 소백산 어의곡이나, 명지산의 아재비고개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본 너도바람꽃은 산등성이쪽이 아니라, 계곡 주변의 산 아래에 많았다. 확실히 사람들의 발걸음이 빈번한 곳은 쉬이 사라져 안타까웠다. 산에서는 키 낮은 산꽃을 살피며 걸어야 한다. 거기엔 우리처럼 애쓰며 살아가는 또 다른 생명들의 소중한 삶터니까.